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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책상 위를 깨끗이 정리하고, 오늘 할 일을 체크하기 위해 노트를 펼친다. 그리고 노트 위에 하루 일과를 기록하기 위해 볼펜을 올려놓는다. ‘모나미 153’ 볼펜. 흑(黑)과 백(白)의 모던한 컬러,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디자인, 사용하기 편리한 똑딱이 버튼,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모나미 153’이란 신비한 이름까지. 이 볼펜은 내게 오래된 친구같은 존재다. 게다가 요즘 말로 가격까지 착하니 더 바랄 바가 없다.
연필을 쓰던 초등학교 시절, 중·고생인 형과 누나가 쓰던 모나미 볼펜을 부러워하고, 수업시간에 볼펜 버튼을 습관적으로 딸깍거리다가 선생님한테 야단도 맞고, 손가락 위에 볼펜을 올려놓고 묘기를 부리듯 뱅뱅 돌리기도 했던 생각이 난다. 아마 이 볼펜을 써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추억담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리라.
이 볼펜이 태어난 건 1963년이란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불혹(不惑)을 넘어 지천명(知天命)을 향해가니, 내겐 한참 형님뻘이 된다. 강산이 바뀌어도 몇 번은 바뀌었을 세월인데, 몇 세대를 넘어도 변하지 않는 디자인이 있다니 참 신기하다.
늘 새로운 것으로 탄생해야 함이 디자인의 덕목이거늘, 이렇게 변하지 않는 디자인을 자랑하는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1967년산(産) 소리 안 나는 용각산, 1937년생(生) 맥아더 장군 선글라스, 그리고 193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탄생한 지포라이터, 1974년에 태어난 바나나 단지우유 등 세대를 초월해 태어날 때 모습 그대로인 물건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신상(新商)’이 미덕인 시대에 당당히 구태를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오래된 물건들을 보니, 변화보단 전통을 선택한 고집이 왠지 반갑고 든든하기까지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새로운 것이 미덕이자, 브랜드 뉴(brand new)를 칭송하는 시대다. 그래선지 자고나면 새로운 것이 쏟아질 정도로 디자인이나 기능의 변화가 빨라졌다. 발전을 위한 변화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지만, 변화를 쫓아가기 숨이 찬다. 무조건 새 것이라면 칭송하는 지금이 꼭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아닐까.
강두용<수성아트피아 사업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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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新商이 미덕인 시대에](https://www.yeongnam.com/mnt/file/201202/20120206.01023072132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