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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구나(Es ist gut).’ 이 말은 임마누엘 칸트가 침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한 시대의 정신사를 관통할 만한 거대한 사유체계를 만든 철학자의 유언치고는 참으로 단순 명쾌합니다. 아무리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 해도 막상 생을 접어야 하는 순간이면 회한이 생기기 마련일 것입니다. 미련이나 집착, 그도 아니면 비통의 심정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든의 나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남긴 이 말은 참으로 멋지고 근사합니다.
칸트의 이 짧은 문장이 오랫동안 저를 참 많은 생각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혹자는 이 문장을 두고 참으로 치열한 사유의 결과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 좋았다는 것일까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완숙한 자의 자족에 찬 긍정일까요. 아니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궁극에 다다른 자의 역설적인 패러디였을까요. 긍정이든 체념이든 알 수는 없지만,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삶을 존중하고 신뢰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100리 밖을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는 칸트는 전형적인 독일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꼼꼼하고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건조한 삶이 인생의 대부분을 지배했지만, 위대한 철학적 업적은 모두 그러한 평범한 틀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길이 남을 만한 사상이나 업적의 대부분이 노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획일화, 노령화되어 가는 현대인의 삶에도 되짚어볼 만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이 매일반이라고 생각하는 타성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인지도 모릅니다.
‘좋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 드러내는 자신의 긍정적인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후회없는 삶이야 있을 수 없겠지만, 스스로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태도야말로 우리의 삶에 중요한 밑천이 될 것입니다. 성숙한 자는 무릇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했던가요. 살아가면서 후회와 긍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나란히 따라다니겠지만, 마지막 순간에 제가 선택한 단어도 ‘좋구나’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변희수 <시인·2011영남일보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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