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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노란 양말의 추억

2012-02-10
[문화산책] 노란 양말의 추억

유난히 추웠던 어느 해 겨울. 나는 작은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잡상인과 걸인들이 여선생 두 명만 있는 걸 알고는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날도 소주 냄새를 풍기는 걸인과 20분이 넘게 실랑이를 했다. 가진 돈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내놓으라는 아저씨의 손바닥은 지독히 가문 논바닥처럼 깊고 굵게 갈라져 있었다. 어디를 가나 구박과 냉대를 받는 걸인들이라 나름대로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그날은 정말 돈이 없었다. 아침에 들고 온 1만원짜리 한 장은 토큰과 점심 한 끼, 그리고 신발 수선에 다 써버렸다.

여름 옷차림을 한 걸인은 도무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속고만 살았냐”고 차게 쏘아붙여도 보고, “다음에 오시면 드리겠다”고 구슬러도 봤지만 꼼짝하질 않았다. 학생들 앞에서 정말 난감한 심정으로 발만 동동 구르며 걸인을 달래는 중 사무실 복사기를 수리하러 한 청년이 들어왔다. 그는 거의 울상이 돼 버린 나의 얼굴과 사무실 문을 막아선 걸인의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대뜸 1천원을 걸인에게 건네줬다. 그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끼며 걸인에게 돌아갈 것을 부탁하자, 그는 잔뜩 골을 내면서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1천원? 요즘 밥값이 얼만데. 이 아가씨가 주는 것을 받을테니 당신은 상관마쇼, 잉.” 밥값 운운하는 그의 말이 기가 차다는 듯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걸인은 그 총각을 잡아먹듯 노려보며 또 한 마디를 했다. “이 아가씨는 보통 3천원씩 주거든.” 그렇게 걸인들과 부딪치면서 1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동사(凍死)와 병으로 공포스럽기까지 한 걸인들의 겨울나기도 끝이 보이고, 봄 햇살 가득한 3월 어느 날. 그 걸인은 다시 찾아와 거친 손으로 나에게 양말 한 켤레를 쥐어줬다. 개나리처럼 노란 양말이었다. “일어나보니 옆에서 자던 친구 하나가 죽어있더라고. 달구새끼가 민발로 다닌다고 벌써 오뉴월이나 된 줄로 알았나 보지, 술 처먹고 홀랑 벗고 자더니만. 양말 속에 달랑 1천500원 남은 거 내가 보태서 샀어. 그냥 노잣돈 하라고 두려다가 누이가 매번 그 친구보고 발 씻고 양말이라도 빨아 신고 다니라고 했쟈? 그래서 고마워서. 오늘은 도온~ 안 받으려고”하면서 돌아서는 걸인의 뒷모습에 그 누군가를 위한 눈물 그림자가 어려 있었다.

그때 걸인으로 살아가던 그 사람,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텐데. 아니면….

서정임 <대구차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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