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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끝자락. 봄이라지만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찬 기운이 완연하다.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 나무, 풀들이 봄 채비에 바쁜 듯하다. 이때쯤이면 봄내음이 물씬 나는 냉이를 캐러 나가곤 한다.
특히 이웃과 봄나물을 즐겨 캐러 간다. 이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주말이면 나물바구니를 들고 앞집 띠 동갑 친구에게 나물 캐러 가자고 재촉한다. 친구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물을 캔다. 나이가 같아야 친구가 된다는 편견도 뿌리째 뽑아서 봄 냉이와 섞어 담는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띠 동갑 친구에게 나를 가리키며 “딸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며느리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우리는 친구야”라고 웃음으로 답하고, 나는 “띠 동갑 친구예요”라고 말한다.
띠 동갑 친구인 우리는 서로 형님과 동생이라 부른다. 20여년을 한 동네에 살다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형님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한다. 나의 일정을 알고 있기에 오전수업이 없는 날이면 일찍부터 차 한 잔 마시며 오늘 하는 수업, 만나는 사람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형님은 모두 편하게 들어준다.
형님은 맏딸이며 맏며느리다. 나보다 12년을 더 살아온 인생선배이기에 생각이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진정한 친구가 한명만 있어도 인생 잘 살았다 하는 것처럼, 그만큼 조건없는 사람의 관계는 어려운 것인가 보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나물 캐는 것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슈퍼마켓에 가면 깨끗하고 신선한 채소가 많은데 얼마나 먹겠다고 그런 걸 캐러 다니느냐”고 투덜대던 나에게 형님은 “땅에서 흙 만지며 나물 캐서 먹는 것은 신의 축복”이라 말하며 “직접 캐서 식탁에 올려놔봐야 나의 궁상을 이해할 거야” 하신다.
또 “조금만 수고하면 돈 쓸 일 없고 많이 캐오면 이웃과 나눠먹고 좋지 않겠어” 하신다. 힘들게 농사지어서 자신은 허드레로 먹고 이웃에겐 빛깔 좋은 놈으로 골라주는 모습은 정겨움 그 자체다.
말을 들어도 경험 많은 늙은 쥐 말을 들으랬다고, 맏딸과 맏며느리로 진두지휘하며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아온 가슴 따뜻한 친구는 내 인생의 선배이며 조력자이다. 그를 보면서 나 역시 후배들에게 가슴 따뜻한 선배의 표본이 되고 싶어한다.
지미희 <대구국악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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