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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주로 서민에 의해 그려졌고, 주고객층 또한 서민이었다. 따라서 민화는 서민의 생활 속에서 숨 쉬었고, 서민의 염원을 담았다. 또 민화는 평민문학과 비슷하게 탄생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조선 후기 평민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배경에 관련된 경우가 많다. 민화에 평민문학 속의 내용이 자주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면 춘향전의 몇 가지 이본(異本) 중 ‘남창춘향가’ ‘옥중화’ 등에 춘향의 방 모습을 묘사하는 내용에 십장생도, 사군자도, 봉황도 등이 소개되고 있다. 또 ‘옥단춘전’에서는 옥단춘의 방에 장식된 그림을 묘사하면서 신선 4명이 바둑을 두는 ‘상산 사호위기도’ ‘삼고초려도’ 등이 등장한다. 무가(巫歌)의 내용인 ‘성조가’에서는 꽃병 그림과 ‘쌍 기린도’ ‘제갈공명 고사도’ 등의 민화가 소개되고 있다. 이처럼 문학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서민이 애호했던 민화는 삶의 염원을 그린 서민적인 회화로, 인간의 욕망을 대신해 그려진 장식적인 그림이었다. 민화에 나타난 염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으로 남녀의 구분이나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 교육 수준과 무관하게 가지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민화의 범주에는 궁중화가가 그리고, 왕족이나 귀족이 향유한 그림도 포함된다. 또 ‘오봉산 일월도’나 ‘책가도’ 등 궁중의 장식화도 민화에 해당한다. 실제 새해가 되면 궁중에서는 도화서(圖畵署·조선시대 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에 명해 벽사진경(邪進慶·나쁜 기를 물리치고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맘)과 수복강녕(壽福康寧·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가길 기원함)을 기원하는 그림을 대량으로 그려 종친이나 신하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다.
그러므로 민화는 어느 장소에 있든, 누구의 소유이든, 목적이 무엇이든 인간의 염원을 그린 장식화다. 그래서 가정의 평화와 부부의 화합을 기원하는 ‘화조도’ ‘잉어도’ ‘모란도’ 등은 왕비의 침실에도, 서민의 안방에도 걸려 있었던 것이다.
김소하 <대구예술대 한국미술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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