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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소에 오래 살며 계절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한 사람의 생로병사를 목격하는 일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5월에 신록이 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덧 6월의 문이 열리고, 이러한 자연의 변화에는 자물쇠도 빗장도 필요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창 밖의 감나무는 윤기 흐르는 잎과 열매를 가득 매달았다. 해걸이를 하느라 어떤 해는 탐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매달리다가도 어느 해는 감이 잘 열리지 않기를 반복한다. 처음 이사왔을 때 3층 베란다 밖의 감나무는 우듬지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나무였다. 하지만 지금은 키가 자라 우듬지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다. 나무가 자란 만큼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도 나이가 들고 변화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문득 아침햇살에 빛나는 감잎을 바라보며 사람만이 풍경을 바라보는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감나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 겨울 얼어붙은 음식물 수거통 앞에서 만난 길고양이와 누군가 아파트 화단에 심어놓은 도라지꽃대, 이런 저런 사건을 숨긴 채 낡아가는 아파트의 가로등과 외벽들 사이의 조각보 같은 하늘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만물의 영장이라 자칭하는 인간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인간이 먹이사슬의 가장 상층에 있는 존재이며, 그와 더불어 자연계의 왕이란 착각이다. 그런 착각을 내려놓고 보면 ‘바라보기’란 실은 ‘마주보기’가 될 것이다. 내가 풍경을 바라볼 때 풍경도 또한 거기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풍경은 또한 오래 지켜보는 자에게 스쳐 지나가는 자와는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에서 14년 된 담배가게 주인 ‘오기’는 브루클린 모퉁이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똑같은 위치, 똑같은 시간에 사진을 찍는다. 오랫동안 한 장소를 찍어 스크랩한 사진 속에는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임에도 다양한 표정의 풍경과 인물의 모습이 찍혀 있다.
10년이 지나면서 아파트는 외벽을 다시 칠했고, 정원수의 가지가 더 풍성해졌으며, 앞집은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비록 풍경만큼 사람들과 친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 한 곳에 오래 살며 풍경을 마주보고 있으니 풍경이 시간이 되는 것을 바라보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조혜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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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바라보기 또는 마주보기](https://www.yeongnam.com/mnt/file/201206/20120605.01022072338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