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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부터 거름냄새가 코를 찌른다. 높은 온도에 거름의 발효기운이 멀리서도 넘쳐난다. 올 한 해 농사의 척도가 퇴비의 양과 같다던 시절이 있었다.
한 가정을 방문하니 연세 지긋한 농부가 낫을 갈고 있었다. 점심때를 막 지난터라 배도 출출한 시각인데, 이 집에는 음식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안주인이 계시지 않구나 짐작하면서 농부에게 말을 건넸다. “식사 하셨어요." 되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점심은 고사하고, 아침도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여쭤봤다. 내용인즉 집사람이 서울 큰딸집에 손녀를 돌봐주기 위해 간 지 달포가 지났다는 것이다. 본인도 가끔 서울에 가지만, 서울생활이 답답할 뿐만 아니라 농사일이 걱정스러워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 되돌아오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긴 한숨을 자신의 발등으로 토해내면서 마을 입구에 쌓인 거름의 냄새를 맡아 봤느냐고 물었다. 나는 동네에 들어오는데, 코가 얼얼할 정도로 거름 익는 냄새가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이 농부는 “내가 저 거름과 다를 게 없다. 자식을 위해 살아 숨쉬는 동안 거름처럼 자신을 썩혀 핏줄을 위한다”며 탄식을 쏟아냈다.
필자는 금세 그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자식들을 열심히 키워 대도시로 출가시킨 뒤 한숨을 놓을라치면 곧바로 그 핏줄의 핏줄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 농부에게는 외손녀일텐데, 맞벌이하는 자녀의 아기를 돌봐주기 위해 또 다른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친할머니도 계시는데 왜 외할머니가 아기를 돌보러 가셨냐는 물음에 그 농부는 “안사돈댁 역시 외손자를 돌보기 위해 딸네집에 갔다”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농부와 필자는 한바탕 허기진 웃음을 마당에 쏟아놓았다.
거름같은 노년의 일상. 그 일상은 자신을 돌보기보다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거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어버이의 사랑을 무엇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까 고민하던 필자는 거름같은 인생항로를 걷는 현대의 어르신 모습에서 씁쓸함을 맛봤다.
한기웅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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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거름같은 노년의 일상](https://www.yeongnam.com/mnt/file/201209/20120920.0101907204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