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중>의학적으로 본 치매
음주·흡연 등 인한 젊은 치매도 급증
강모씨(여·34)는 오랫동안 암 투병을 하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57)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가족 중 한사람은 언제나 시어머니 옆에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시어머니를 혼자 집에 두고 잠깐 외출하고 돌아온 강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경험했다. 시어머니는 변이 묻어 있는 팬티를 입고 “밖에 나가겠다”고 했다. 온 힘을 다해 말리자, 이번엔 방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깔려있는 이불을 손으로 잡아뜯으며 거세게 눈물을 쏟아냈다. 마구잡이로 날뛰는 시어머니를 진정시켜 잠을 재운 뒤 주방에 들어가자 강씨는 또 한번 놀랐다. 10개 넘는 음료수를 시어머니가 모조리 마신 것이다.
40대 한 남성은 최근 자주 다니던 길을 잃고 30분가량을 헤맸다. 가족에게 전화를 해 집은 찾았지만 이런 증상은 계속 됐다. 지난 달력을 펼쳐놓고 아내에게 “왜 생일상을 안 차려줬냐”라고 핀잔도 했다. 생일날 가족끼리 모여 야외에 놀러갔던 것을 잊은 것 같았다. TV에서 돼지와 닭이 나오자 자꾸 “오징어”라고 소리쳤다. 이 남성은 정신과를 찾아 ‘일시적일 것’이란 진단을 받았지만, 자신은 물론 가족은 치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교직에 근무하는 이모씨(60)는 최근 대학병원에서 ‘치매 진행’ 진단을 받았다. 1년 전부터 자꾸 살이 빠지고 돈 계산이 잘 안됐다.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을 잘 찾지 못해 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이처럼 치매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약물이나 알코올로 인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치료 가능성이 거의 없어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치매(Dementia)란 ‘정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정상적인 지적능력을 유지하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으로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기억력, 언어 능력, 판단력, 사고력 등의 지적기능이 지속적이고 전반적으로 저하돼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되는 상태를 말한다. 기억력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언어·실행·인식기능 장애 중 한가지 이상을 동반하면 치매로 진단한다.
주요한 증상으로는 말을 할 때 단어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거나 식사를 할 때 밥이나 반찬 중 한가지만 반복적으로 먹는 것 등이 있다. 글씨를 잘 쓰지 못하고 세수를 할 때 물을 얼굴에 묻히는 대신 비누칠부터 하는 등 순서를 바꾸거나 아예 하는 방법을 몰라 쩔쩔맨다.
치매의 유형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은 알츠하이머와 뇌졸중에 의한 혈관성 치매다. 특히 알츠하이머는 퇴행성 질환으로 원인을 알 수 없고 계속 정도가 악화된다.
상대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치매도 있다. 전측두엽 치매다. 이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생하며, 기억력의 장애는 경미한 편이지만 이상행동(헛것을 보거나 공격적·반복적 행동을 하고 성격적 장애가 생기는 것)을 나타낸다.
30∼40代 환자 6년간 40% 증가
50代도 두배 이상 늘어
고혈압·당뇨·심장질환
치매 유병률 높여
경북도내 건설회사에 다니는 김모씨(50)는 요즘 치매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평소 업무상 술을 자주 마셨으며 하루이틀 먹지 않으면 불안감이 몰려왔다. 1년 전부터는 술을 마시다 옆사람과 싸움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폭력적 성향까지 보였다. 이상을 느낀 김씨는 병원을 찾았고 ‘알코올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
30∼40대도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창 활동할 나이에 치매로 고통받는 이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치매환자는 52만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인 25만6천여명이 65세 이상이다. 문제는 2006∼2011년 6년 동안 30∼40대 환자수가 876명에서 1천221명으로 40%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50대 치매환자도 2006년 3천179명에서 지난해 6천547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젊은치매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술·담배가 주된 원인일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학업과 직장 스트레스 등을 술과 담배로 풀려는 분위기가 문제라는 것. 알코올성 치매환자 중 65세 이상은 전체의 0.3%로 미미하지만 30∼40대는 10%나 된다.
치매의 원인은 우울증, 약물, 알코올 중독 등 다양하다. 학계에서는 보통 70∼80가지 원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갑상선질환이나 비타민결핍증, 두부외상, 감염성 뇌질환도 치매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현아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는 “고혈압이나 흡연, 당뇨,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면서 “성인병 자체가 치매 유병률을 높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극심한 스트레스를 치매의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박종한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치매 환자 가족은 치매 원인으로 가정문제 등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검증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 치매가 의심되는 일반적 증상
◇지적기능
△사물의 이름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TV 드라마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 △ 계산을 할 수 없다 △지하철에서 내려야 할 역을 지나가 버린다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날짜와 시간을 잘 잊어버린다
◇일상생활기능
△수돗물이나 가스 밸브 잠그는 것을 잊어버린다 △ 늘 찾아가던 길을 잃어버린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지 못한다 △목욕, 머리감기, 이닦기 등을 싫어하게 된다 △혼자 외출하는 일이 전보다 많이 늘어난다 (자료: 한국치매가족협회)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 연도별 젊은 치매환자 현황 (단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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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30∼40대 | 876 | 911 | 1,010 | 1,118 | 1,177 | 1,221 |
50대 | 3,179 | 3,689 | 4,352 | 5,121 | 5,825 | 6,547 |
이효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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