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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함께! 경북 저수지로 .15] 구미 금오지

2012-11-16

핑크빛 부교 따라 물 위를 걷다가
발갱이들에 서서 타작소리 듣다

[떠나요! 함께! 경북 저수지로 .15] 구미 금오지
구미 금오지를 따라 총 2.4㎞ 조성된 ‘금오산 올레길’의 부교 구간(길이 190m). 절벽에 저수지의 수위 조절 장치를 정자형 전망대로 만들어 풍취를 더했다.

[떠나요! 함께! 경북 저수지로 .15] 구미 금오지
수변 산책로에서 본 금오산과 금오저수지. 저수지 가에 총 2.4㎞의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떠나요! 함께! 경북 저수지로 .15] 구미 금오지
구미 지산동의 발갱이들.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의 아들 신검이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곳이다.

[떠나요! 함께! 경북 저수지로 .15] 구미 금오지
지산동 발갱이들 앞에 서있는 발갱이들소리(경북도 무형문화재 27호) 유래비.


구미의 명산 금오산. 정상 부근의 고위 평탄면에 내린 빗물이 모여 북쪽 계곡을 따라 흐른다. 물은 큰 골짜기를 만나 수직으로 떨어진다. 쾅 쾅 떨어져 부서진 물은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산을 울린다. 하여 옛 사람은 ‘금오산을 울리는 소리’라 ‘명금폭’이라 했고, 또 누군가는 이 물이 흘러 큰 은혜가 되었다 하여 대혜폭포라 했다. 명금 혹은 대혜폭포의 물은 여울져 흘러 남통천을 이룬다.

금오산의 능선이 북으로 뻗어 구곡산과 만난다. 골짜기의 수가 아흔아홉이라 구곡 또는 아홉산이라 부르는 주름진 산이다. 구곡의 계류가 청명한 자갈소리로 흐르다 아홉싸리 마을 즈음에서 모여 흘러간다.

그렇게 남통천의 물과 구곡의 물이 내려 다다른 산 중턱에, 두 물줄기를 합한 큰물을 만들기로 한다. 1945년 1월1일 시작된 공사는 두 해가 지나자 드디어 완성된다. 금오저수지다. 가두어진 물은 금오천으로 흘러 낙동강과 한 몸이 된다. 이 물의 수혜 면적은 60만㎡에 달한다. 1993년에는 유선장과 금오랜드가 개장됐다. 그리고 지금, 가두어진 물가에 길이 열렸다. 용수의 원이 되고 선유의 장이 되어 주었던 금오지는 이제 더불어 도락과 향유의 길로 사랑받고 있다.



◆저수지를 휘 도는 금오산 올레길

또각또각 낮은 굽 소리가 경쾌하다. 나무 데크 위를 걷는 소리는 흥취에 리듬을 보탠다. 운동화라면 미세한 탄력감에 몸이 날듯 가벼울 것이다. 이런 길이 2.4㎞, 저수지를 한 바퀴 휘 돌아 있다. 이 길을 ‘금오산 올레길’이라 한다. 한 눈 팔지 않으면 약 30분, 완행하면 한 시간은 족히 소요되는 길이다.

돌 까마귀가 서있는 백운교에서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길 아래는 물, 몇 그루 버드나무가 잔 머리칼처럼 어깨를 간질인다. 금오산을 등 뒤에 남겨두고 헤어지는 애인처럼 둑으로 향한다. 무지개다리 건너 둑에 다다랐더니, 둑 위의 산책로와 전망대는 지금 공사 중이다. 둑 아래엔 화원을 조성한다는 나대지와 너른 공영 주차장이 가까이 보인다.

둑의 끄트머리에서 핑크빛의 부교가 시작된다. 곁의 절벽에는 정자 하나가 매달려 있다. 현판 없는 정자가 기이했는데, 알아보니 저수지의 수위 조절 장치를 정자형의 전망대로 만든 것이라 한다. 부교는 부유의 느낌 없이 지상으로 오른다. 숲길을 조금 걸으면 휴게 쉼터와 야외무대 공사가 진행 중인 뒷길을 지나고 곧 짧은 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 구곡산의 계류가 저수지로 흘러든다.

곧 해가 질 듯한 하늘 아래 오리배가 선유한다. 벤치 놓인 물가의 모퉁이를 돌아 나가니 금오랜드에 불이 켜진다. 금오정에 오른 연인들의 검은 그림자가 짙게 새겨지고, 다시 백운교에 다다른다. 금오산은 아직 가을 불 켜져 있다.



◆ 왕건 최후의 결전, 발갱이들

금오천이 금오교 아래를 지나 낙동강과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흐르면, 그 곁에 누런 들판이 스윽 따라 붙는다. 금오천에서 보면 좁장한 들이지만 지산동 33번 도로를 달리면 꽤나 넓게 퍼져있는 들이다. 구미는 공업도시라는 선견이 강하다 보니 이 들을 지나칠 때마다 느닷없다. 그러나 낙동강의 서쪽에 자리한 들은 해평 철새 도래지와 한 뼘 거리다. 이 들을 발갱이들이라 부른다. 한자로는 발검평야(拔劒平野), 검으로 뺏은 평야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이력이 있다.

935년, 왕건은 팔공산에서 견훤에게 패한 후 일선군(현 구미) 냉산(현 태조산)에 산성을 쌓는다. 그리고 그 아래 낙산동 일대에 군창을 지어 군량을 비축하고 장기전을 준비했다. 이후 왕건은 선산읍 생곡리 앞 낙동강 연안에서 있었던 견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936년, 왕건은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견훤의 아들 신검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그곳이 바로 지산동 앞 들, 발갱이들이다. 왕건이 신검의 부대를 칼로 물리쳤다 하여 ‘발검(拔劒)들’이라고 불렸고, 그것이 발갱이들로 변형된 것이다.



◆ 들에 울려 퍼지는 노동의 노래 ‘발갱이들소리’

수확의 시기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비워진 들과 오롯한 들이 갈마든다. 옛날, 두레나 품앗이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고됨은 잊고 함께하는 흥은 높이도록 들판의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이 들에 전해져 오는 노래가 ‘발갱이들 소리’다. 노래는 농사짓는 순서에 따라 총 열 두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즈음 발갱이들엔 ‘타작 소리’가 울렸을 게다. 그 노래는 이렇게 전해진다. ‘때려나주소 / 힘차게 / 모다서들 / 때려나주소 / 때리라 / 때려나주소’. 일 년 농사의 마무리니 얼마나 경쾌하고 후련했을까. 사실 노래의 전체를 보면 벼가 아니라 보리다. 오뉴월의 보리타작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구절들이지만 비워지고 있는 11월의 들판에서도 그 소리는 마음의 영상으로 떠오른다.

마을 노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노래는 1980년 중반부터 지역 향토 사가들에 의해 채록되었고, 1991년에 정식으로 채보되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받았다. 1996년에는 발갱이들 노래의 유래비가 들 앞에 세워졌고, 1999년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40여명의 단원에게 전승되고 있고 매해 유월이면 들에서 공연한다.

푸른 금오산 위, 흐린 구름 사이로 햇살이 새어 나오는 날, 가을들에서 흥을 내어 본다. 타작소리는 이렇게 이어진다.

‘때리라 / 때려나주소 / 팔자소관 위에 / 멍석말이 / 꼴뚜 밑을/누가알까 / 넘어간다 / 뭉텅이보리를 /때려나주소 / 힘차게 / 모다서들 / 때려나주소 / 때리라 / 때려나주소 / 이내청춘 / 이놈의 / 뭉끈뭉끈 힘을쓰서 /늙어지니 / 보리가 / 때려나주지 / 어느누가 / 중놈의 / 목 마르면 / 감당할까 보린가 / 보린가 /술도 먹고 /늙은 사람 / 뭉글뭉글 / 배 고프면 / 죽지를 말고 / 뭉글기도 하다 / 밥을 먹고 / 젊은사람 / 몸끗몸끗 /늙지를 마소’
글·사진=류혜숙 객원기자

여행정보

경부고속국도 구미IC에서 나와 좌회전하여 약 2㎞를 직진, 금오산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조금만 가면 금오저수지다. 저수지를 두르는 금오산 올레길은 총 2.4㎞의 산책로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도립공원 초입의 공영 주차장에 주차해 맨발 산책로를 따라 올라와 백운교 부근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주차장에서 둑의 사면으로 난 길로 바로 오를 수도 있다. 금오랜드 부근이나 식당가 앞에 주차한 후 저수지로 갈 수도 있다.

일대는 금오지 생태 공원으로 취사, 음주, 낚시, 흡연이 금지되어 있고 이륜차, 자전거, 애완동물의 출입도 금지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동절기에는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개방한다.
공동기획 : 한국농어촌공사 경북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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