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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시작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매년 12월31일과 1월1일이 되면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천하려 한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 없다. 며칠이 지나 흐지부지되면 설날을 기점으로 다시금 시작하리라 마음먹고 의지를 다진다. 나도 이번에는 새로운 시작을 더 잘해볼 요량으로 설날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설 연휴 뒤,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이 시작하는 일을 막 끝내고 나오는 길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부고소식. 방금 전까지 있었던 막연한 기대감과 설렘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순간 시작이란 것에 대한 의미보다 끝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한 분을 보내드리는 의식을 마무리할 즈음 다시금 들려온 나의 가족을 보내야 한다는 소식. 이것저것 챙겨 며칠을 그렇게 일상과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래서일까 다시금 일상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다.
시작해야 하는 일은 미루고, 미뤄진 일은 취소가 되고.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된 나에게 주어진 조카들과의 시간. 역시나 움직이지 않으려는 마음과 몸 상태로 일은 미루고 잠을 택하려 하는 그 순간, 집으로 돌아갈 조카에게 미리 인사를 해야겠다 싶었다. “○○야, 잘 가”라고 말했더니 이제 7살이 된 조카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모도 죽어?”한다. 일주일 사이 두 분을 보내는 의식을 치르고 있어서일까.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가끔 극단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중에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경험하거나 지인들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 그렇기에 죽기 전에 원하는 것을 꼭 해보고자 한다며 더욱 절실히 문을 두드리고 경험하려한다. 자신의 의지를 더욱 불태운다. 이제서야 ‘죽음’은 삶의 에너지를 더해줄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잠시 잊고 있었다.
충분히 눈물을 흘리고 그 분들을 보낸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까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죽음 뒤 나의 묘비에는 어떤 말들로 채워질까?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바라는 묘비명이 생긴다. 나의 묘비에 내가 쓰고 싶은 말들을 적으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이리 생각하니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도 더욱 많아진다. 내 묘비에 내가 원하는 말들로 채울 수 있기를.
이미은 <연극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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