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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 5월30일, 프랑스의 항구도시 낭트에서 천민의 아들로 세상에 출연한 ‘조제프 푸세’는 30세 무렵까지 공부하고 가르치며 기숙학교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잔잔했던 그의 인생무대가 요란스레 널뛰기 시작한 계기는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였다. 졸지에 혁명정부의 국회의원으로 신분상승한 푸세는 한동안 튀는 언동을 삼가면서 힘센 다수파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오늘은 온건파, 내일은 강경파의 둥지로!
프랑스혁명기 왕의 목숨은 종종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루이 16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자 푸세는 강경파로 돌변해 반혁명주의자 2천명의 목을 두 동강 냈고, 한때 자신의 상전이었던 로베스 피에르 추방에 앞장서기도 했다.
몇 년 후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그는 황제의 장관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폴레옹이 다시 추락하자 그는 본능적으로 배신의 숄을 뒤집어쓴다. 실망한 나폴레옹이 마지막 귀양지에서 “내 인생에 완벽한 배신자를 단 한 명 알고 있네. 그 인간은 바로 푸세라네”라고 회고하자, 이 철면피는 “내가 나폴레옹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워털루가 그를 배반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때그때 변신과 배반으로 일관한 푸세의 행로가 생존했던 한 인간의 자화상이라면,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 ‘리플리’의 주인공은 표절과 가짜로 젊음을 허비한 인물을 그린 비극적 영상물이다. 호텔의 접대부로, 연회장 피아노 연주자로 생활하는 톰 리플리의 꿈은 언제나 상류사회로의 진입이다. 가끔 살다보면 이런 하류인생에게도 쥐구멍에 햇빛 쏟아지는 날이 있는 법! 그에게 동창생이자 부잣집 아들인 디키가 재수좋게(?) 걸려든 것이다. 그날 이후 톰은 디키가 좋아하는 재즈를 듣고, 그의 옷을 빌려 입고, 일거수일투족을 흉내내면서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어느 날 디키가 “네가 잘하는 게 뭐니?”라고 묻자 “날조하고, 거짓말하고, 흉내내기…”라고 대답한다. 과연 그럴까?
요즘 우리 문화예술계에는 톰 리플리와 같은 가짜인간들, 조제프 푸세처럼 변신과 배반을 일삼는 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공허한 말과 비수같은 신경줄을 가진 이 곡예사들은 수시로 카페에서 실을 풀어 하수인들을 조종하고 반듯한 예술인들을 덮쳐 농락하고 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전종건 <수성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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