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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입하도 지났으니 봄이 다 간 건가? 아무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로 시작하는 ‘봄날은 간다’라는 이 노래는 한국의 유명시인 100명이 현존하는 대중가요 중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로 꼽은 곡이다. 또한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하여 불러서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작 가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투병생활을 하셨던 우리 어머니께서도 참 좋아하셨던 노래다. 당신께서 직접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이 아니라 침대 머리맡에 앉아 귀에다 대고 내가 이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자리보전하고 누워만 지내게 되면서 급격히 의식이 흐려졌고, 사람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노래 한 곡 불러줄까”라고 하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하셨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라고 조용히 불러드리면 희미한 목소리로 “참 잘한다”라고 화답하곤 하셨다. 이 노래의 영향 때문인지 나에게 봄날은 연분홍빛으로 비춰지고, 그 빛깔은 언제나 애잔한 느낌을 준다.
우리에게 봄날의 짧은 호사를 누리게 해주던 벚꽃도 때맞춰 피었지만, 지난달 초 무렵의 세찬 비바람에 눈처럼 지면에 쌓이면서 또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눈길’이 문득 떠오른다. 소설은 휴가 나온 아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팔았던 집을 집주인에게 부탁하여 아직 그대로인 양 아들과 함께 그 집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아들도 집이 팔린 것을 눈치채지만 애써 모른 척하고, 새벽녘 귀대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눈길을 헤치며 신작로까지 간다. 그길로 어머니는 그 눈길을 눈물을 쏟으며 되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자식이 있을까. 그런 속 깊은 사랑을 받아 놓곤 모른 척, 잊은 듯, 그런 부채가 없는 듯 적당히 무시하며 살지 않았던가. 나 역시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없는 회한에 휩싸이고 애달픈 마음 가눌 길 없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봄꽃처럼 우리 인생도 그렇게 명멸하리라. 그것이 세상의 이치고 거역할 수 없는 순리겠지만 그래도 무심히, 야속하게 떠나가 버리는 봄꽃과 인생은 늘 애잔하기만 하다. 가는 이 봄날이 서럽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우리는 져버린 봄꽃을 그리워하고 찬란한 여름을 맞으면서 다음에, 이 다음에 만날 봄꽃들을 기다리며 그렇게 봄날을 보낸다.
김형국 <아양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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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봄날은 간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5/20130510.01018072042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