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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이 성적 쾌락을 탐닉했던 남자! 유혹의 거장 지오반니 카사노바는 1798년 6월, 이국 땅 성당 묘지 아래로 떨어졌지만 지금은 전 세계 선남선녀들에게 미워할 수 없는 호색한으로 힘차게 솟아올랐다. 카사노바에게 연애란 ‘관능의 소금’이었고, 오직 여인들과의 몸뚱이 마찰만이 삶의 활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는 무려 1천명의 여자와 3천여일의 밤을 숨가쁜 애무로 부드러운 살결을 파고들었다. 금욕이란 그의 뇌에는 우둔과 권태에 지나지 않았던 걸까?
열여섯권에 달하는 카사노바의 회고록은 성애의 편력을 담은 오디세이이며, 영원한 헬레네를 찾아 떠나는 욕정의 사나이 일리아드다. 세비아의 전설 ‘돈 후안’만 빼면, 유럽 역사상 몇 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할 이 바람둥이의 오장육부는 ‘불혹’을 훌쩍 넘어설 때까지 애욕의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여자들을 유혹한 죄를 물으면 그는 껄껄 웃으며 “여인들에게 시중들어주었을 뿐이오”라고 배짱 좋게 대꾸했다.
정직하게 발정 난 주피터의 리비도는 종종 위험한 함정에 내몰리기도 했다. 네 번에 걸친 매독, 두 번의 약물중독, 열두 번의 결투에서 칼에 찔린 상처, 스페인 감옥의 지긋지긋한 나날들, 가마솥 같은 시칠리아에서 서릿발 내리는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도피 여행들…. 이 아찔한 스캔들도 남근이 발산하는 정력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카사노바가 여인들에게 반했듯이 여인들도 그에게 빠져들었다. 숙모가 조카에게 침대를 비켜주고, 어머니가 딸에게 잠자리를 제공했으며, 관대한 남편은 아내를 그에게 밀어 넣었다. 왜일까? 그는 이탈리아산 탕아였지만 라틴어·그리스어·프랑스어에 능통했으며, 스페인어와 영어도 대화 중에 섞을 줄 알았다. 또 문학·철학·역사·의학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점성술·연금술·마술까지 부렸다. 게다가 춤과 바이올린·펜싱·카드놀이에까지 빼어난 능력을 과시했으며,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스무 편의 희곡을 발표한 팔방미남이었다.
여왕의 행차에 따라나선 50대 신하가 먼 나라 지하주점에서 20대 안내도우미의 엉덩이를 허락 없이 더듬은 죄(성추행)로 며칠째 백성들로부터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여인의 취향을 배려하지 않는 사내의 음란한 손놀림이 국제적 망신과 국내적 소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리라. 뒤늦게나마 그에게 건네주고 싶은 교훈이 떠오른다. “감각의 순례자 카사노바는 수많은 여인을 파괴하지 않고 정복했으며, 타락하지 않으면서 유혹했노라.”
전종건 <수성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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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회상 카사노바](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5/20130521.01022072253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