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자’란 스님이 되기 위해 입산했지만 아직 계를 받지 못한 예비수행자를 일컫는다. 행자시절은 출가자에게 참으로 중요하다. ‘중노릇 행자 때 다 한다’는 말처럼 스승을 모시면서 배우고 익혔던 그 모두가 일생 동안 출가수행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 할 것 없이 출가자나 성직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전생의 깊은 숙연은 수많은 장부를 출가의 길로 이끌고 있다. 불법을 만나는 복도 예사롭지 않은데, 출가의 복을 누리는 사문의 길은 더 말해 무엇할까.
내 나이 22세 되던 1998년 7월 무더웠던 어느 날. 아침 무렵 부모님께 출가 허락을 받고 집을 나섰다. 이미 출가의 뜻이 확고했던 터라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말없이 아버지와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었다. 적막한 시골길을 걸었는데 이상하게 집에서 멀어질수록 어머님의 울음소리만 더 크게 들려왔다. 무뚝뚝한 아들이지만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건 매한가지였다. 터미널에 도착한 나와 아버지의 어색한 시간도 끝날 즈음, 아버지께 “저 이제 갑니다. 건강하게 잘 계세요” 짤막하게 인사드리고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 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보였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런 내가 향한 곳은 경상도의 어느 절이었다.
나의 고향은 전라도 무안. 그때까지 한 번도 경상도엔 가 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될 수 있으면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 탓이었는지 뜻하지 않게 나를 이끈 곳은 대구 팔공산 파계사였다.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 동구청 앞에서 파계사행 401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허기가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도 쑥스럽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마지막 만찬(?)으로 먹었던 짜장면 곱빼기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종점에 도착해 처음 본 팔공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내 넋을 빼 놓기에 충분했다. 사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불교와 인연이 전무했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구례 화엄사를 가 본 이후로 절 경내에 들어선 것은 그날 파계사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절집의 생활이나 행동거지에 무지했던 내가 머리를 깎고 행자가 되겠다고 무작정 절을 찾았으니 사중 스님들은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파계사에 도착해 처음 만난 스님과의 황당한 일화는 다음 주에.
연호 <스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산책] 나의 행자시절 1](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5/20130523.01019071600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