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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나의 행자시절 4

2013-06-13
[문화산책] 나의 행자시절 4

삭발 후 팔공산 파계사의 행자생활이 시작됐다. 어린 시절 인격 형성이 평생을 좌우하듯 스님들에게 출가본사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파계사의 주지 성우 큰스님은 조계종에서도 으뜸가는 율사로 이름 높았고 율사가 수행하고 공부하는 ‘영산율원’을 운영중이었다.

7일 삼천배의 힘 덕분이었는지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서 밤 9시까지 숨 쉴 틈조차 없이 바쁜 행자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존재였던 주지스님은 행자들에게 청정계율의 중요성과 수행정진을 누누이 당부하셨다. 하지만 절에 산다고 하루아침에 세속의 습관과 버릇이 없어질 리 만무했다. 행자들이 벌이는 의외의 사건과 실수는 늘 큰스님을 놀라게 했지만 웃음과 용서로 덮어주셨다.

그 가운데 다음 사건은 아직도 도반들과 만날 때마다 회자되는 파계사의 추억이다.

고달픈 행자시절 늘 부족한 것은 먹는 것과 잠이다. 어느날 배가 너무나 고파서 공양주(식당일을 책임지는 소임) 보살님께 라면 두 개만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보살님은 흔쾌히 라면 두 개를 끓여 주셨다. 육식을 금지하는 절간에서 인스턴트지만 고깃국물로 만든 라면을 스님들 모르게 먹을 생각을 했다니 간도 컸다. 구석진 아궁이 앞에서 웅크리고 맛있게 라면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주지스님 목소리가 들렸다. 정 행자를 부르는 것이다. 들킬까봐 숨도 못 쉬고 얼어 붙어버린 내 몸. 가슴 졸이며 주지스님 가시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잠시 후 인기척이 없어서 먹다 남은 라면 꿋꿋하게 다 먹고 빈 그릇 들고 밖으로 나오는데 기절할 뻔했다. 문 여는 순간 나와 마주친 주지스님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스님은 빈 라면그릇을 보시면서 “정 행자 너 여기서 뭐하노?”

짧은 적막 속에 순간 난 ‘아~ 이제 고향집으로 가야겠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날 밤 난 라면 먹은 죄로 법당에서 혼자 삼천배를 해야 했다. 전무후무한 파계사 행자의 라면사건은 사중의 스님들에게 금세 퍼져나갔고,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이전보다 더 하심하며 몸을 숙이는 계기가 됐다. 비록 혼은 났지만 청정계율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파계사에서 먹었던 라면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연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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