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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나의 행자시절 5

2013-06-20
[문화산책] 나의 행자시절 5

아침공양을 하고 나면 사중스님이 모두 나와 마당을 쓸거나 청소 울력을 한다. 살얼음판 같았던 파계사 경내의 분위기가 팔공산의 찬 칼바람만큼이나 매서웠던 시절이다. 김 행자와 열심히 울력 중이었다. 해우소 옆에서 스님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파계사 청정 계율 도량에서 배드민턴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물론 율장에도 스님들이 채나 도구를 이용한 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차분하고 평안해야 할 수행자의 마음상태를 들뜨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행자옷을 입고 있었지만 아직 속물이 빠지지 않았던 때문이었는지 한창 게임에 열중하는 스님들 쪽으로 저절로 발길이 갔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김 행자와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스님들도 우리를 보더니 옆에서 점수 기록을 하라고 하는 거다. 우리는 행자라는 신분과 처지는 금세 잊고 함께 응원하고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한 30분이 지났을 무렵 스님들은 “김 행자, 정 행자도 배드민턴 쳐 보라”며 배드민턴 라켓을 넘기고 자리를 떴다. 갈등의 순간이었다. 해우소 모퉁이 너머 멀리서 주지스님 방을 보니 스님은 아직 차를 드시고 계셨다.

‘잠깐인데 어때?’ 이내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김 행자와 즐겁게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5분도 안 되어서 또다시 몸이 얼어붙었다. 어느새 다가온 주지스님이 철없는 김 행자, 정 행자의 배드민턴 치는 모습을 한심스럽게 바라보고 계시는 거다. 조금 전만 해도 방안에서 차를 드시고 계셨는데 놀란 마음을 누를 길 없었다. 저녁예불이 끝나고 그날도 어김없이 3천배 참회가 따랐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던 주지스님도 이제 세속의 나이 일흔을 넘겼다. 얼마 전엔 조계종의 최고 어른으로 원로의원에 추대됐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시계 초침 같았던 스님은 요즘 서울에서 영상포교라는 큰 짐을 맡아 한국불교를 걱정하신다. 간혹 문안을 드릴 때면 그렇게 반가워하실 수 없다. 큰 스님도 파계사 시절 ‘정 행자’의 서툴고 조마조마했던 기억을 떠올리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부처님은 삼라만상 모든 게 머무르지 않고 변한다는 ‘무상(無常)’의 가르침을 주셨다. 추웠던 겨울은 가고 팔공산 파계사에도 봄이 찾아왔다.

연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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