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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대문호 키케로(BC 106~43)는 정적(政敵)들로부터 참혹한 죽임을 당하기 1년 전, 평생 친구였던 아티쿠스에게 ‘우정에 관하여’라는 긴 서한을 남겼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62세.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이 문장들은 2천년의 굉음이 흘렀지만 노년의 우정에 대한 금언으로 다가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노인이 가득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 각자 돈을 챙기고, 건강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쏟는 형국입니다. 또 어떤 노인들은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온갖 취미에 몰두하고, 외로움을 견디려고 철지난 로맨스를 펼치거나 지성의 힘을 단련하기도 합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뭔가 빠진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키케로는 행복한 노년에 우정이라는 양념을 빼고는 도무지 맛을 낼 수가 없다고 충고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삶의 아름다운 비밀’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의 우정론은 인생을 깊이 그리고 길게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봄직한 정직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비밀과 감정을 드문드문 따라가 보겠습니다.
우정이란 착한 마음씨와 호감을 곁들인 감정의 완전한 일치라고 합니다. 그것은 남은 미래를 향해 밝은 빛을 비추어 영혼이 불구가 되거나 넘어지지 않게 도와줍니다. 나아가 행운은 더욱 빛나게 하고, 불운은 나누고 분담함으로써 가볍게 해주지요. 그래서 노년에 진정한 친구를 얻으면 가난해도 부자며, 약해도 강하고, 죽어도 살아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날까지 우정이 지속되기란 꽤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금전욕과 명예욕, 거짓과 질투심이 끼어들어 파탄을 불러오기도 하지요. 키케로는 우정의 신성불가침한 법칙으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요구해서는 안되고, 그런 요구를 받더라도 들어주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합니다. 더하여 도와주되 줄 수 있는 만큼,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중용의 미덕과 과잉의 재앙으로 들리는군요.
우정은 아름다운 영혼 없이는 싹틀 수 없고, 우정보다 더 황홀한 것은 없다고 키케로는 마지막 서한을 보냅니다. 그렇습니다. 친구간의 선의 속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는 인생이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노년을 저만치 앞둔 필자에게 얼마 전, 연상의 우정이 찾아왔습니다. 그 고마운 우정에게 이 글을 보냅니다.
전종건 <수성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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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노년의 우정](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6/20130625.0102207231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