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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로서 되어진 음악은 영원하다”는 공자의 말이 있다. 20여 년 전, 서예가이며 화가인 친구 김병규가 유학을 떠나면서 인사차 작업실을 찾은 나에게 대뜸 글을 하나 주겠다면서 써준 것이다. 족자로 만들지 않고 곱게 포개어 가지고 다니며 성악가로서 정체성이 흔들릴 때마다 가끔 꺼내어 본다. 한마디로 성악가로서의 본분을 지키라는 친구의 덕담일 게다.
최근 극오페라, 팝페라, 뮤페라, 클래팝 등 신조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무얼 말하는 건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 모두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고육책에서 나온 말일 게다.
대중음악은 대중이 마음 편하게 즐기면서 부담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반면 클래식은 그것이 갖고 있는 본질인 질서와 논리가 의식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사람과 공감되어야 한다.
크로스오버는 어떠한가. 1970년대 트럼펫 주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와 록을 결합한 재즈록을 도입했다. 80년대 중반엔 도밍고와 존 덴버가 ‘Perhaps love’를 불러 클래식과 팝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파바로티와 친구들, 안드레아 보첼리, 사라 브라이트만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우리의 조수미, 신영옥까지 크로스 오버 음반을 출시했다.
이와 같은 크로스오버는 본질이 변하지 않고 서로 다른 장르의 문화가 교감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대중과 소통하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본질이 흔들리고 편협화되어 문화 공급자로서의 본분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고대 그리스인은 철학과 수학과 음악을 따로 보지 않았다. ‘좋은 음악은 우주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데, 인간의 정신은 우주의 조화를 감지하고 인간의 영혼은 그 음악을 흉내 내려 한다. 따라서 음악교육의 질이 어떠냐에 따라 그 국가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음악을 통해 ETHOS(도덕적 기질, 성격)를 통제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표출되는 FATHOS(충동, 격정)가 달라질 수 있다고 역설했던 고대 그리스인의 윤리관에서 한 수 배워야 할 시점이다. 음악이 음악의 본질을 역행할 때 사회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음을 통감하고, 음악인으로서 사명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새삼 친구가 그립다.
이현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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