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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 따라 신라가 쌓은 城이 수십개…5㎞ 내외 일정한 방어패턴 가져

2013-07-26

대구지역 고대 성곽 (낙동강 연안)

낙동강변 따라 신라가 쌓은 城이 수십개…5㎞ 내외 일정한 방어패턴 가져
헬기에서 내려다본 화원토성(빨간점 일대)과 그 일대 낙동강. <달성군청 제공>
낙동강변 따라 신라가 쌓은 城이 수십개…5㎞ 내외 일정한 방어패턴 가져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와 죽곡리에 있는 문산리산성(왼쪽 빨간점)과 죽곡리산성이 멀리 보인다.
낙동강변 따라 신라가 쌓은 城이 수십개…5㎞ 내외 일정한 방어패턴 가져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초곡리에 위치한 초곡산성. 삼국시대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나라’ 고구려. 고구려의 천리장성은 요동반도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이었다. 연개소문에 의해 16년간 축성한 산성은 신성에서부터 개모성~요동성~백암성~안시성~건안성~비사성까지 이어진다. 고구려, 백제, 가야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 역시 수많은 성을 쌓았다. 이 가운데 낙동강을 따라 쌓은 성만도 수십개가 넘는다.

옛 신라에 속한 대구 인근 낙동강변에서만 지금까지 10여개의 크고 작은 성곽이 발견됐다. 이 성곽들은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됐다. 대구지역에는 낙동강 상류에서부터 하류로 하산리 성터~문산리산성~죽곡리산성~화원토성~설화리산성~초곡산성~석문산성~내리토성 등으로 이어졌다.

조효식 나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4세기까지는 대구의 성곽분포가 일정한 방어패턴을 형성하고 있지 않았지만 5세기에 들어서면서 대구 서쪽 관문인 화원토성을 중심으로 5㎞ 내외의 일정한 패턴으로 성곽이 축성됐다”고 했다. 낙동강 연안 대구지역 고대 성곽 가운데 원형을 어렴풋하게나마 보존하고 있는 성은 문산리산성, 화원토성, 초곡산성, 석문산성 등이다.


달성이 여성 상징한다면
화원토성은 남성 상징…
다사·고령 한눈에 조망
공원개발로 원형 상실
인근 고분 수백 基 밀집

초곡산성은 명칭 다양
과부·개구리 등 관련…
석축 돌 무수히 남아

강정고령보 위에 서면
죽곡·문산리산성 보여
정수장에 4개 대형고분

구지면 석문산성서 본
서쪽 풍광은 끝내줘…
내륙·수상 교통로 조망


◆문산리산성

문산리산성(汶山里山城)은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에 있다. 금호강 강창교를 지나 대구~성주 구간 30번 국도에서 3㎞ 정도 가면 문산리에 이른다. 여기서 남쪽 마을진입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일명 ‘나루터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대구상수도정수장이 위치한다. 정수장과 취수장 사이 농로를 따라 오르면 남북으로 돌출된 능선이 나타난다. 이 산성은 5~6세기 삼국시대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산리산성은 마천산(해발 250m) 자락 해발 50m 7부 능선 구릉에 조성된 테뫼식 산성으로, 해발 40m선을 따라 성곽이 둘러져 있다. 성의 둘레는 약 0.8㎞로 토석혼축성이다.

남서쪽은 낙동강과 인접하는 낭떠러지이고, 성 안은 다소 평평하며 망대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다. 산성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봉촌리고분군과 문양리고분군이 있다. 문산리산성을 쌓은 취락집단은 현재 문산정수장 내에 있는 문산고분군에 매장됐던 집단으로 보인다. 문산정수장 안에 4개의 대형고분이 있다.

◆죽곡리산성

죽곡리산성(竹谷里山城)은 낙동강과 금호강 두물머리에 위치한다. 신라가 가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한 성으로 본다. 산성(山城) 또는 구성(狗城)으로 불리며 어떤 할머니가 혼자서 성을 쌓았다고 해서 노고성(老姑城) 으로도 불린다. 문산리산성과 인접한 이 성은 낙동강 방면이 잘 조망되는 돌출 구릉에 위치한 테뫼식 산성이다.

삼국시대 5~6세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산성 내부에는 망대시설 등이 확인됐다. 이 산성은 수로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신라와 가야가 다사지역의 패권을 두고 다퉜던 곳으로 유추할 수 있다.

성의 둘레는 1.3㎞ 정도로 토석혼축성이다. 현재 죽곡리에서 고령까지 강정고령보가 완공돼 보 위에서 죽곡리산성과 문산리산성을 함께 볼 수 있다.

◆화원토성

대구분지에 있는 달성이 고대 성곽의 대표라면 낙동강변에는 대구지역 화원토성(花園土城)이 대표적이다. 달성이 여성을 상징하는 오목한 자달성(雌達城)이라면 화원토성은 남성적인 볼록한 웅달성(雄達城)으로 불린다. 이 성은 3~4세기에 축성돼 6~7세기까지 이어진 토석혼축성이다. 현재 화원동산 전망대는 토성의 정상부였다. 침식지대 해발 약 60m에 위치하는 이 성의 둘레는 630m 정도다. 성 내부에는 봉수대 터가 있으며 봉수대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화원토성은 낙동강과 백사장,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 등이 조화를 이룬다. 전망대에서 보면 서쪽 다사지역과 남쪽 고령군 다산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 경덕왕이 이곳의 경치를 사랑해 상화대(賞花臺)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인근 구라리(九羅里)는 경덕왕이 아홉 차례나 내왕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상화대 위에는 팔각정이 있다. 성 내부는 수영장, 잔디밭, 주차장, 수목 등으로 꾸며져 있고, 동물원도 있다.

유서 깊은 토성이나 공원개발로 원형을 상실한 게 아쉽다. 토성이 유원지로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으로 광복 전까지 전국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떨쳤다. 광복 후 시설이 황폐화됐으나 70년대부터 공원으로 다시 조성됐다. 화원토성 구릉에서 남쪽으로는 수백기의 고분군이 밀집해 있다. 이것으로 유추해 볼 때 고분군이 자리 잡고 있는 성산리 일대에는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곡산성

초곡산성(草谷山城)은 2005년 경북도문화재연구원이 지표조사를 했다. 이 산성은 달성군 유가면 초곡리 산1에 위치한다. 산성 아래에는 초곡리가 있다. 초곡산성에 관한 문헌자료로는 1906년에 편찬된 ‘교남지’ 현풍군조에 과녀성(寡女城)이라고 처음 등장한다. 삼국이 서로 다툴 때 한 과부가 분연히 일어나 성을 쌓고 적을 막았다고 나와 있다. 또 개구리를 닮았다고 해 ‘와와(臥蛙)산성’, 소가 누운 형상이라고 해 ‘와우(臥牛)산성’이라고도 했다. 인근 양리(陽里)에서는 ‘양리(陽里)산성’ ‘양동(陽東)산성’이라고 부른다.

조선후기 경상도편 현풍군 지도에는 ‘비슬산 서편에 산성이 있는데 초곡산성’이라고 표기돼 있다. 초곡산성은 비슬산 유가사 서쪽 해발 620~650m의 산 정상부에서 7~8부 능선을 따라 쌓은 타원형의 테뫼식 산성이다.

이 성은 현재 석축을 구성했던 돌만 무수히 쌓여 있다. 산성의 둘레는 약 1.7㎞로,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중소형급이다. 주변 산세는 험한 너덜지대와 가파른 산비탈로 이뤄져있다.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입지에 위치해 있으나 성내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수원과 계곡이 발달하지 않아 장기 농성에는 불리한 조건이다. 동쪽 성벽이 가장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는데 성벽의 높이는 2~3m, 높은 곳은 5m에 이른다.

축성 시기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쌓았다고 하나 성내 삼국시대 고분군이 있고 과녀성에 대한 기록, 축성수법 등으로 짐작해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본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맞은 편 대니산에 줄을 매 허수아비를 매달아 각종 조화와 재주를 부리게 해 왜군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산성 남쪽으로는 유가면 일대를 비롯해 테크노폴리스가 한눈에 들어오고 낙동강 줄기가 뚜렷하게 보인다. 산성 북쪽은 옥포 용연사 계곡이며, 서쪽은 현풍 들이 펼쳐져 있다. 성 북·서쪽은 급경사의 자연지물을 이용해 축성했다. 성 안에는 성문과 망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내에는 축대와 돌무지가 꽤 발견된다.

초곡산성 북편 능선은 현풍면과 유가면, 논공읍과 옥포면을 구분한 고개로 옛날에는 많은 사람이 이용했다고 전해온다.

◆석문산성

석문성(石門城)은 구지면 도동리 ‘절골마을’ 북동쪽 석문산과 진등산에 자리 잡고 있다. 산성은 현풍읍에서 낙동강을 따라 약 6㎞ 떨어진 곳으로 낙동강과 접하는 산지 서편자락에 위치한다. 맞은편 서편 산지에 대가야산성으로 추정되는 도진리성지와 인근 고분군이 위치한다. 두 성곽 아래에는 조선시대 물류집창지인 개포나루가 있으며, 인근 야산에는 개포리고분군이 분포한다.

성곽에서는 구릉을 U자형으로 감아도는 낙동강과 서쪽 방향의 조망이 탁월하다. 북쪽으로는 현풍읍 일대, 동남쪽으로는 창녕지역으로 이어지는 내륙과 수로상 교통로 및 분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석산성(石山城)이라고 부른다. 서남쪽으로는 20리다. 선조 30년 왜란에 곽재우가 옛 성터라고 해서 고쳐 쌓았다. 둘레는 2천759척”이라고 나와 있다.

성의 형태는 포곡식 산성이고, 재질은 토석혼축성이다. 성 내부에는 건물터와 망대, 문지가 확인된다. 대동지지(大東地志)의 내용을 참고하면 성곽은 선조 3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 성은 삼국시대 축성돼 조선시대까지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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