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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숙<시인> |
친정 가는 길, 자인 계정숲 앞 새못엔 연꽃들이 한여름 대낮의 관능경을 펼치고 있다. 실한 연밥을 얻기 위한 연(蓮)들이 모무(母舞)를 추는 한 귀퉁이 한 장군의 말 무덤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침묵한다. 초등시절 옥란이와 화해하던 못 둑엔 수줍은 편지 사연들이 사금파리처럼 빛나고 있다.
저 아름다운 꽃들을 두고 하필 왜 가시연꽃을 찾는가? 올해도 우포늪은 가시투성이 몸, 유관순 언니 같은 가시연을 잘 꽃피우고 있을까? 시인이 된 뒤 처음 가본 우포늪엔 대지의 여신인가? 치마폭 한없이 넓은 여자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 잘 흘러가던 낙동강 한 줄기가 왜 늪이 되었을까?
아하!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으니까 꽃 한 송이 피워보자고 넓고 넓은 바다로 가는 꿈을 멈춘 것이다. 무릎을 치면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우포늪에서’란 초고 몇 줄 쓰고는 좋아했던 그 시절 사십대, 모든 감각이 다 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펄펄 뛰고 있으니.
어쨌거나 그 당시 늪에서 바람 따라 흘러 다니기보다 오로지 감동적인 시 한 편을 얻기 위해 몸과 마음을 집중하겠다는 시인의 각오와 자세를 보았던 것이다. 사대가, 삼대가 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필자의 운명을 변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련한 맏며느리를 시인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신 시어머님께 늘 감사한다. 딸이 소설가 되길 비는 아버지의 기대가 무거워 현모양처가 되겠다며 시집이란 늪에 안주하려 했으니, 아버지 생전에 시인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다시 새못을 바라보니 진흙탕 속에서 고운 꽃송이 받쳐 들고 있는 연들이 보살님으로 보인다. 왜? 저렇게 서 있을까? 이 세상을 이어가는 힘인 그런 자비와 사랑을 밟히는 풀꽃에서도 찾아내는 일이 시인의 일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순수 서정시인 소월도 ‘밥과 자유’라는 시로 사회 어둠을 따지기도 했다. 이육사나 이상화처럼 나라를 위한 지사시인의 길을 생각하는데 그가 잘못된 성형에 우는 뉴스를 얘기한다.‘예쁜 쌍꺼풀은 물 튀는 변소가 있는 시골과 모기와 며칠 씨름하면 생기는데’ 다시 때밀이 근성이 날을 세운다. 정치도 종북도 아닌 때밀이저울이 돋보기를 든다. 바람이 이슬 안은 연잎을 흔들자 눈이 부셔서 정신을 찾는다. 까막새 늙은 소나무가 이 더위 잘 견디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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