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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봉평메밀꽃통신

2013-09-05

9월이다.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눈 가는 곳마다 소금을 뿌린 듯 메밀꽃이 아른거리는 곳, 달의 숨소리가 들릴 것 같은 봉평에 메밀꽃축제가 열린다. 숨이 막힌다는 표현을 탄성처럼 쏟아지게 하는 꽃, 달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 꽃을 보려고 불현듯 달려간 어느 가을. 개울 물소리처럼 조곤조곤 들려주는 허생원의 사랑 얘기에 귀를 기울이던 것이 생각난다. 섶다리의 소나무 향기가 아련하고, 들판과 산등성이의 메밀꽃이 무리 지어 재잘거리는 어느 가을밤에 나귀방울 울리며 오일장을 떠돌던 허생원은, 물방앗간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성서방네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하룻밤의 짧은 사랑이 허생원의 반평생을 채워준다. 불꽃같은 하룻밤이어서 더 애틋하고 간절했던 허생원의 사랑은 어쩌면 아들일지도 모르는 동이를 만나며 마침내 완성된다. 거꾸러질 때까지 달을 보며 걷겠다던 허생원은 지금도 나귀방울 딸랑거리며 소금꽃길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이다.

가을의 전령사인 듯 9월이면 어김없이 메밀꽃이 피지만 메밀꽃만은 꼭 봉평이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낸 서정시 같은 한 편의 소설이 이렇듯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회자(膾炙)되고, 1936년 일제 치하의 그 암울한 시절에 이효석이 불러주며 비로소 의미를 띠기 시작한 봉평만의 아름다운 문학적 향기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여행을 위해 집을 나선다. 취재를 위한 여행이거나 충동적인 여행이거나, 여행은 내게 설렘에 더하여 낯선 길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을 동반한다. 문밖에 길이 있고, 길에 사람이 있고,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이 거기 존재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삶을 엿보기도 하지만, 여행의 완성은 역시 자연과의 조우에 있다. 길 위에 사람이 있듯이 길 위에 자연이 있다. 길을 떠난 사람이 거기서 무엇을 보고 오느냐 하는 것은, 마음이 무엇을 보고 듣고자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은 자연을 만나며 인간 본래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자연은 사람을 만나며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다. 인간 속에는 태생지에 대한 타고난 그리움이 있고, 그 본능적인 그리움과 향수가 산과 들, 꽃과 바람, 하늘을 찾아가게 한다.

9월이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왔다. 이 가을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빌미로, 어두운 시대에도 굴복하지 않고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향기를 일궈낸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찾아 읽어보면 어떨까.

장정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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