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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예술가를 뽑자면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예술인들이 대부분 한 가지 분야에서 크게 이름을 드러내고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팔능거사의 호를 받은 석재 서병오 같은 분은 많지 않은 듯하다.
석재 서병오는 대구가 낳은 최고의 예술가로서 여덟 가지, 즉 시, 서, 화, 거문고, 바둑, 장기, 의술, 구변 등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대구 동성로에서 대부호인 서상민의 아들로 태어나 숙부의 재산까지 모두 물려받아 세상에 남부럽지 않은 부호로 예술과 인생을 향유하고 살았다.
석재는 이미 열 살 정도에 사서삼경에 통달하였다고 하며, 그런 그를 더욱 학문에 열중시키기 위해 동화사의 시주단월이던 부친은 그의 나이 열세 살 전후에 많은 스님들이 살던 동화사로 보내 공부를 하도록 했다.
그의 부친은 매일 전주에서 구해온 장지 8장의 앞뒤 양면에다 빼곡하게 글씨를 써서 검사를 받게 했는데, 새벽에 일찍 대구 동성로를 출발한 하인이 점심때쯤 지나서 동화사에 도착하여 다시 숙제한 글씨를 받아서 부친에게 전해주는 일을 반복하였다고 한다.
석재는 동화사 시절에 개자원화보와 십죽재화보를 중심으로 독학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단지 그림과 서화공부만 하였을까. 그는 스님들과 자주 지내면서 인격적인 감화를 받기도 하고, 불교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던 것 같다.
그런 인연 때문이었을까. 그는 생애를 통하여 불교와 관련된 많은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얼마 전 문경의 희양산 봉암사에 갔다가 비로자나불을 모신 금색전에 석재가 쓴 주련 네 폭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구양순, 왕희지, 소동파, 동기창과 더불어 추사체까지 연마한 석재의 명필이었다. 깊어가는 가을날, 그가 남긴 주련의 글씨에 취하여 대구의 뛰어난 한 예술가를 떠올리며 부처님의 광대무변한 실상을 새삼 깨닫는다.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世間所有我盡見/ 一切無有如佛者(하늘 위 아래 부처님 같은 분 없으니/ 시방세계 둘러보아도 견줄 만한 이 없네/ 이 세상 모든 것 내가 다 살펴보았지만/ 그 모두 부처님같이 존귀한 분은 없네.”
무량 스님<동화사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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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동화사와 서병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9/20130910.01022073140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