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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유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한가위 추석이다. 출가하기 전에 큰아버지 댁으로 추석을 지내러 가려면 산을 넘어야 했다. 할아버지와 함께 산등성이를 넘으면서 길가에 떨어진 상수리 열매와 밤을 줍기도 하고 억새풀을 헤치며 산머루를 따먹던 기억이 아련하다. 시간은 참으로 무상하게 흐른다. 여기 동화사 산자락 언저리에도 어느덧 가을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하다.
모든 만물이 제가 처음 왔던 그 길로 다시 되짚어 돌아가느라 고즈넉하다. 성찰하는 시간, 삶의 고도를 높이기 위하여 더욱 하심하기로 한다. 마음을 겸허하게 낮추는 일이야말로 수행자가 맨 처음 떼는 첫걸음이므로 결코 소홀할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처음 출가하던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다시 한번 흐트러진 마음의 옷깃을 여민다. 산자락 곳곳에 지는 잎과 시든 풀을 바라보며 시간의 무상함을 깨닫고 이를 내 안에 돌이키고자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누구라도 더러 피할 수 없는 삶의 벼랑을 만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보듬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스며들고 북돋워야 할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날, 마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저 나무처럼 우리도 제각각의 인연에 따라 좋은 결실을 나누고 이를 누릴 수 있어야 하겠다. 추석은 나누고 감사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한가위는 우리들 내면에 뜬 풍성한 달을 누리는 귀한 시간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또한 추석은 농부들이 피땀 어린 노고로 비바람을 이겨낸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기도 하다. 들판에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고 낙엽이 하나둘 떨어지는 사색의 계절이기도 하다. 모든 존재에게 감사하고, 생명의 귀중함을 느끼게 하는 감사의 계절이다. 나무가 낙엽을 떨구어 홀로서기를 준비하듯 우리도 이제 모든 번뇌와 망상을 내려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한가위를 맞이할 일이다.
이제 귀성과 역귀성의 행렬이 도로를 메울 것이다.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듯 서로 반가운 얼굴로 바라보며 행복해 할 것이다. 부디 모든 생명들이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무량 스님 <동화사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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