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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 스님 <동화사 박물관장> |
가을을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한 권의 책이 일생을 좌우하기도 하고, 또한 그를 통하여 내면의 성찰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제는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 헌책방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 사 왔다. 그중 한 권이 출가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법정스님의 대표적 수필집 ‘무소유’다.
그분의 담백하고 소박한 문장과 진솔한 글은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분은 이런 책을 통해 불교를 대중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한 분으로 기억된다. 그분은 우리가 익히 아는 ‘이름 있는 자리’에 있었던 분은 아니다. 그러나 숱한 저작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든 올곧은 삶과 수행에서 이루어졌든 그분이 남긴 세상의 명성은 우뚝하고 무겁다. 그는 마지막 생을 정리하면서 비어 있는 시선으로 뭇 인간에게는 가장 무거운 세속의 ‘명성’을 티끌처럼 버리고 떠나갔다.
자신이 남긴 모든 저작을 ‘말 빚’으로 정리한 담백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분의 부음은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정리되고 평가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 준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무소유). 그분의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비롯해 수십 권의 책에서 한결같이 설파한 무소유의 정신은 무한경쟁과 탐욕의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의 등불이다. 그러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정신은 인간의 과도한 집착과 욕망을 경계한 것이지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자칫 무소유의 정신을 잘못 이해하면 불교는 모든 욕망을 부정한 무소유의 종교, 또는 경제적인 활동에 매우 소극적이거나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는 종교, 심지어 세속적인 노동을 떠나있는 초월적 종교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의 경제관은 올바른 방법에 의한 재산의 증식과 획득에 힘써야 하고, 나눔과 베풂을 통하여 이웃에게 환원하기를 권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육바라밀 중에 보시바라밀이 첫째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욕망의 질적 전환’이라는 원리는 내가 정당하게 번 돈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내 마음대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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