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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길 위에서

2013-10-29
무량 스님 <동화사 박물관장>
무량 스님 <동화사 박물관장>

농촌이나 산들의 사계는 뚜렷하다. 계절이 지나가는 자취가 선명하다. 때로는 연초록 잎사귀와 꽃으로, 때로는 따가운 햇살과 추녀 가득 쏟아지는 빗물로, 그리고 산들이 저마다의 색채로 단장하고 자기의 외투를 벗듯이 툭툭 낙엽을 떨구어 내면 가을이다. 그 나목 위로 눈꽃이 피면 겨울이 우리들 앞에 선 듯 다가선다. 그 계절마다 지니고 있는 독특한 향내와 빛깔, 시간은 그때마다 계절의 향연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 계절의 끝자락 가을의 중턱에서 낙엽이 물들어 가고 있다. 스쳐가는 바람에서 혹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낙엽 한 잎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가을날 오후는 바람 소리로 스산스럽다. 길고 긴 여름날의 폭염과 비바람이 그친 논밭에선 농부들의 가을걷이가 한창이고, 이제는 고즈넉한 햇살과 스산한 바람만이 청명한 가을하늘을 지키고 있다. 이때쯤이면 팔공산 동화사 주변의 나뭇잎도 하루가 다르게 형형색색의 옷을 바꿔 입는다. 이토록 역동적인 자연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깨달음은 추상적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현존임을 체득하는 것이다.

당나라 어느 시인은 “서리 맞은 가을의 낙엽이 2월 봄날의 꽃보다 붉다”고 했던가. 그 붉은 꽃이 떨어져 지상의 길을 덮는다. 사라진 길 위에서, 길을 걷던 자도 또는 길을 찾던 자도 그 길에 대하여 막막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다만 이 낯선 길 위를 서성이는 사람에겐 낙엽 타는 냄새와 같은, 깊은 인간의 채취만이 있을 뿐이다. 때가 되면 오던 길로 순하게 돌아갈 채비를 하는 나그네 길. 여름의 역동적 활동을 마치고 순환의 고리를 이어 다시 소멸을 준비하는 시간. 이런 자연이야말로 진정한 연화장세계이다.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 법당 추녀의 풍경을 울리며 스쳐간다. 운문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는 화두를 통해 가을의 풍광 속에서 본래 면목을 드러낸다. 가을의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줄기 하나로 그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듯 우리도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이 계절이 주는 언어를 살펴볼 일이다. 가을바람이 낙엽을 쓸어내듯 실체로 드러난 본연의 자리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맑고 고요한 자리다.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다 떨어내고 소슬한 바람 한가운데 우뚝 서서 그 뒷모습을 아름답게 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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