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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태풍 하이옌으로 인한 재해는 너무 잔인한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다. 뜻하지 않게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죽어 가는 아이를 안고 ‘미안하다, 미안하다’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젊은 엄마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몰라 눈에 초점 없이 그저 넋 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 아내와 아이들을 구하려다가 본인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가장들…. 그 할퀴고 간 상처만큼 남기고 간 얘기도 깊고 많다.
우리는 무얼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마음만 쓰인다. 그리고 다시 또 살아남은 우리 중 누군가에게 닥칠 다음 일을 생각한다. 이 자연이 주는 경종은 우리가 살아 온 방식에 대한 혹은 태도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옷장에 넘쳐 나는 옷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냉동고가 언제나 빽빽하게 차서 저장된 음식들이 숨을 못 쉴 지경이 되고, 때론 그 냉동고 문을 열기 무섭게 몇 주씩 얼어 있던 고깃덩어리들이 머리를 치며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간울림의 ‘아나바다 장터’이다. 계절내내 옷장을 지키고 있는 옷들, 싫증난 가방, 물려 줄 수 있는 교복이나 학용품, 놀이기구나 다 읽은 책들….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요긴한 일상용품들, 나누고 싶은 물품들을 모아 울림장터를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은 평생 음악회 한번 못 가본 우리 어르신들을 위한 시골음악회 만들기, 아이티지진현장에 반창고 보내기, 풍토병으로 죽어가는 도미니카공화국 아이들에게 모기장선물하기, 칫솔 하나 없어 치아가 엉망인 마다가스카르 아이들에게 칫솔과 치약 보내기 등으로 사용된다. 너무나 작은 것이지만 우리 이웃을 살피며 살아 보자는 실천인 동시에 ‘가벼워지는 삶’을 지향하는 일종의 ‘공동체 운동’이다.
때때로 우리는 ‘more than enough’(너무 많은)를 기도하고 기대한다. 이성은 불편하게 살아야, 좁은 길을 선택해야 그것이 생명의 길이라고 이해하는데 우리 몸은 안락을 추구한다. 그 결과로 이렇게 호된 경고를 받으면서도 편하고 익숙해 진 길을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유혹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우리의 이성을 흐리게 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이 한 마디. ‘More than enough?’
이상경<공간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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