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기계도 아니다…결국 사람이다”
자본주의 만능사상에 대한 반작용…삶의 가치 재발견으로 새로운 희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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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인문학 정신을 통해 일상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수성도서관에서 열린 인문학강좌 통청아카데미에서 이강화 계명대 교수의 ‘영화와 음악’에 대한 강연을 수강생들이 경청하고 있는 모습. 수강생들은 “인문학을 배운 후 일상에 긍정적 변화가 찾아왔다”고 입을 모았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지난 20일 오후 7시, 대구시립수성도서관 1강좌실. 이날은 통청아카데미의 인문학 강의가 있는 날이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채워갔다. 중학생부터 머리가 희끗한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여 강의를 경청했다.
이날 주제는 ‘영화와 음악’. 영화 속에서 음악이 갖는 의미와 역할에 대한 내용이다. 수강자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영화평론가인 이강화 계명대 교수는 강의가 끝난 후 토론시간을 가졌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로 토론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통청(通靑)아카데미는 한국과정사상연구소에서 만든 인문 교양강좌로, ‘소통을 통해 세상을 좀더 푸르게 만들자’란 뜻을 담고 있다. 이 인문학 강좌는 지난 2009년 10월부터 매주 진행됐다. 4년 전 한국과정사상연구소 연구원들이 지역 사회와 시민에게 인문학 정신을 전달해 일상에서 희망을 찾도록 도와주고 서로 소통하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딱딱하고 어려운 고전들만 다루기보다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고 삶 속에 접목시킬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인문학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려는 것이다.
6개월 전부터 강의를 듣고 있다는 김숙희씨(50·대구시 서구 중리동)는 인문학을 알고 스스로 변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자신의 삶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전업주부로 살며 자신보다는 가족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모든 열정을 바쳐왔지만 요즘 들어 시선을 스스로에게 돌려 자신만의 시간과 여유를 갖게 됐다. 성악을 배우고 책에서 얻은 지식을 곱씹는 습관도 생겼다.
김씨는 “인문학을 몰랐다면 어떤 것도 새롭게 시도하지 않았을 거다. 인문학은 학자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을 것”이라며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고 다시 개선하는 과정이 이렇게 뜻깊은 일인지 예전엔 몰랐다”고 말했다.
이동호씨(46·대구시 동구 신암동)는 2년 전부터 이 강좌를 듣고 있다. 그는 인문학이 “삶 자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책과 인문학을 좋아했지만 밥벌이에 급급하다보니 이상은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문학을 다시 접하고 삶에서 또다른 희망을 봤다고 했다. 오래 전 꿈이었던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인문학은 내 뿌리 깊은 곳에 숨어있던 지적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인문학을 통해 배운 점 하나를 꼽으라면 ‘삶이 힘들더라도 삶의 목표를 잃어선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다.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인문학의 대중화는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다음소프트가 지난 2008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네이버 등 국내 블로그 2천600만개에 올라온 글을 분석한 결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태호 통청아카데미 원장은 “인문학 열풍은 자본주의 만능사상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본다. 돈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상황 속에선 필연적으로 인간 소외 문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인간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내몰리면서 생겨나는 슬픈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문학의 대중화 현상은 향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4대 국정기조의 하나로 문화융성을 강조한 새 정부가 정신문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그럼에도 인문학이 사회 전반적으로 들어온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인문학을 통해 나를 찾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면 건강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열풍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준영기자 jy2594@yeongnam.com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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