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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희 <극단 콩나물 대표> |
극단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한 해 동안 극단 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이런저런 대화 가운데 극단 단원들이 학교에서 연극 지도하면서 느꼈던 점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았다. 한 연극 교사가 ‘가면극 수업’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 가면극 수업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선생님은 특별히 정신지체 학생들로 구성된 반을 맡아 연극치료 수업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가면극 수업을 제안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무대에 설치된 가상의 상담소에서 자신의 얘기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나눠 준 하얀 가면본을 받아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이 쓸 가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면 위에 색칠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심각해지기도 했다. 완성된 가면을 쓰고 벗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어색함을 없애려고 하였다. 마침내 그 가면이 익숙해진 아이들은 무대 위 상담소 앞에 섰다.
가면을 쓴 아이들은 모두 정신지체 학생들이었다. 조금 느리다는 것과 표현이 미숙하다는 것 외에는 일반인과 거의 동일한 감정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가면을 쓴 그들이 상담소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상담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얼마나 일반인과 다르게, 차별되게, 소외되게 살아왔는가를 말해 주었다.
가면을 쓴 아이들은 예외 없이 가슴에 쌓아 두었던 아픔과 상처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애자라고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욕하고 심지어는 학대한 사건을 하나씩 떠올렸다. 자신에게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욕설로 어떻게 했는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가면을 쓰고서야 한 인격체로서 용기있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픔을 고백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업 중의 가면극이었지만 너무나 진중한 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가면을 가슴에 품고 그 자리를 떠났다.
가면극 수업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원들과 나는 가슴이 멍해졌다. 우리 극단이 한 해 동안 활동한 많은 공연 중에서 나는 이 가면극이 가장 아름답고 값진 무대였다고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얇은 가면을 하나씩 나눠 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작은 위로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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