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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서른여섯이 되는 후배가 어느 날 뜬금없이 물었다. “선배, 서른여섯에 뭘 하셨어요?” 글쎄, 서른여섯에 나는 뭘 하고 지냈을까.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이 서른여섯, 그 즈음 나는 그때까지도 매듭짓지 못한 공부를 진행중이었다. 마치 역마살이 낀 사람처럼 수업을 받기 위해 헤매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때까지 주워들은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졸업해봐야 생존도 예측할 수 없는 교회음악을 무슨 사명처럼 여기며,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이 학교 저 학교를 돌아다녔다. 또 세상에 둘도 없는 개구쟁이 여섯살과 일곱살 된 연년생 남자아이를 키워야 했던 목소리 높은 엄마였다. 무엇보다도 지금 공간울림의 모태가 된 하우스콘서트에 시동을 걸며 허둥지둥 살기도 했다.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을까. 문득 서른 여섯 쯤에 받았던 누군가의 손편지 한 통이 생각난다. 마치 어느 시인의 시처럼 간략하고, 울림이 있는 편지는 마음에 남아 이렇게 두서없이 밀려 다닌다 싶어 불안해 질 때마다 다시 제자리를 생각하게 하는 기준이 되어 준다.
“사람과 사람/살가운 만남이 사라지고/ 마음의 중심이 사라져 제각기 자기 집에 갇힌/ 낯설고/ 바닥이 마른 삶/ 여기 한 ‘울림’ 있어/ 아름다움을 지키시라/ 이따금씩 하늘도 쉬어가는 맑은 자리 되시라/ 하늘소리 내려/ ‘울림’에서 ‘떨림’으로/ ‘떨림’에서 ‘살림’으로….”
지금도 눈을 돌리면 새해를 위한 기획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여 있다. 이 기획서들은 조만간 나를 떠나 누군가에게 잔잔한 울림이 돼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울림의 무대는 극장일 수도 있지만, 바라건대 궁극적으로는 우리 일상의 언저리마다 닿게 되기를 바란다. 또 그 울림이 세상의 모진 모서리마다, 치유가 필요한 마음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삶을 만나 보듬고 만져서 그 ‘울림’이 사람을 살려내는 ‘살림’으로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무대가 될 다음 시간에 가장 빛나는 유산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상 경<공간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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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울림에서 살림으로](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12/20131220.01018073610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