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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로 ‘오해나 막힘이 없이 서로 잘 통함’ 정도로 볼 수 있는 ‘소통’이라는 단어를 요즘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하우스콘서트가 많은 요즘 이 소통이 이뤄지는 음악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작은 무대에서의 연주는 관객과 소통하기에 좋은 조건이 많다. 하지만 연주자 입장에서 관객과 1m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숨 쉬는 소리, 구두소리, 의자소리, 휴대폰 벨소리가 아닌 휴대폰 만지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조건에서 연주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손톱이 악기에 부딪히는 소리까지도 관객에게 들리는데 마치 발가벗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통’이라는 맛을 알고 나서부터 하우스콘서트의 매력을 느끼고 있다. ‘소통’의 정의처럼 관객과 잘 통하는 음악을 그 어떤 연주자가 싫어할까.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는데, 불행하게도 연주회에 오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엔 알 수가 없다. 지인이 많이 온다고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경우도 꽤 많다. 사실 지인들이라 한들 신이 아닌 이상 어찌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까.
작은 무대에선 관객이 잘 보인다. 퇴근 후 집에서 퍼져있고 싶지만 아내의 등쌀에 밀려 온 아빠의 피곤한 눈빛, 아이와 가사에 시달려 피곤한 엄마, 인터넷 게임하고 싶은데 엄마 손에 끌려온 아이….
연주자가 꾸밈없는 연주를 하고 실수조차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표정이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짐을 본다. 아빠는 웃으며 “솔직히 피곤하긴 한데 생각보단 재밌었다”, 엄마는 “10대 때 친구들과 공연 보러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아이는 “재밌었는데 조금 지루했다”라는 말을 한다. 실제로 듣는 이야기이고, 이러한 에피소드가 서로 간에 소소한 힐링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통함에 있어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나 자신을 꾸밈없이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나 자신을 솔직히 보여줌으로써 상대방도 마음이 열려 서로 간의 오해나 막힘없는 통함이 이뤄지지 않을까.
최훈락<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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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소통](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1/20140103.0101807413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