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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신년이 되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글을 신문에서 찾아 읽는다. 신문사마다 걸출한 신인을 대문짝만하게 내다 건다. 창작의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밝은 표정들을 보기 위해 나는 신문에 실린 작품들을 꼼꼼하게 챙겨보는 것 또한 즐긴다. 젊든 늙었든 누구나 다 구절양장 같아서 글로 뱉어 내게 하는 것 또한 문학이다. 처음의 작품에서 풍기는 이미지의 결의는 대단하다.
그런데 시를 쓰겠다는 사람들 중에 몇몇은 문학을 마치 사람의 품질을 나타내는 수단쯤으로 여긴다. 이는 삶 전체를 문학에 두지 않는 것이다. 물론 전문적인 전공자들이야 인생의 전부를 걸고 삶 자체를 문학에 두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시를 사랑하고, 쓰고 싶은 마음은 다 좋다. 그런데 겨우 일 년도 채 안 배운 사람들이 어디어디 등단을 하는 일이 생긴다고들 한다. 물론 문학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이들이야 말할 것 없이 반길 일이지만. 문학은 과시가 아니다. 자신의 절절한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영혼이 하는 말 그리고 자연이 하는 말, 그것을 대필하는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시인이라고 했다.
문학은 인간학이다. 쓰고 싶은 대상에 충실하며 그 대상의 실체를 느끼게 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언어를 조탁하는 것 또한 시인의 몫이다. 그런데 문학을 너무 쉽게 여기는 문학인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예전에 선배 시인은 그랬다. 등이 쩍쩍 갈라지는 아픔을 몇 번은 겪어야 제대로 된 시가 나온다고. 그것이 시 몸살이라고 했다. 자신을 몇천 번은 고아야 터져 나오는 언어들이 있다. 시인은 앵무새가 아니다.
시를 삭히는 ‘시김새’라는 말이 있듯 삭힌 소리의 절정을 판소리에서는 ‘수리성’이라고 한다. 그 수리성이 내는 절정, 시인에게도 그 말이 천형이 되어야 한다고 그랬다. 그리하여 시의 층계를 반복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 층층계에 수없이 나를 버리고 줍고 하는 것이 시인의 길이라고. 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닦아내는 수행처이기에 나 역시 이 천형 같은 시인의 길을 무서워하면서도 덤벼들었다. 내 전부를 던져 넣는 데 어쩌면 평생이 걸릴 것 같다.
정하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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