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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은 <극단 온누리 기획실장> |
지난 토요일 ‘나또외’(나를 또다시 외치다)라는 심리연극으로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했다. 참여자 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표현해 보는 시간. 연극이라는 치유적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을 만나는 시간. 참으로 아름다운 여정이다.
그 안에서 필자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여자와 남자로 만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분들은 그렇게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둥지를 만들었다. 그 둥지 안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녀들을 낳았다. 그런데 여자와 남자로 만난 그 두 분은 삶의 여러 가지 무게로 자녀를 돌볼 만큼의 여유가 없었고 결국 가족의 둥지에 자녀들만 남겨둔 채 각자의 삶을 선택했다. 이혼의 형태이든 죽음의 형태이든, 아니면 함께 살고 있지만 정서적 교류가 없는 형태이든.
사실 가족이라는 둥지 안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경제적인 이유나 삶의 무게라는 부분이 우리에게 많은 자극으로 다가오기에 행복이란 단어를 모두가 공감하고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더 많은 것이 아닐까 한다.
여자와 남자로 만난 부모님은 각자의 삶을 선택했다. 자녀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분들의 운명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분들의 삶의 무게를 내가 대신 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쉽지 않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기에 아버지를 챙겨야 하고, 미안해하는 어머니에게 화가 나지만 엄마의 역할을 내가 하고 있어야 한다. 동생들까지 돌보면서. 나의 꿈은 뒤로한 채 집안 사정을 걱정해야 한다.
모두들 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의 꿈은 사치인 것 같다. 이 순간엔. 그런데 사실 나의 자리는 자녀의 자리이고 내가 어른의 자리인 아버지나 어머니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자녀들이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부모의 자리에 서고자 노력한다. 그럴 수 있을 것이란 착각으로. 그것이 착한 아이의 형태나 아니면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의 형태로 드러나겠지만. 두 가지 모두 부모에게 관심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르다고 할 수 없으리라.
나는 과연 가족이라는 둥지 안에서 어느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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