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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버지

2014-11-27

아버지는 시내에서 술을 드시고 늦게 들어오시는 일이 많았다. 산골짜기의 적막을 깨우는 자동차의 엔진소리를 배경으로 콧노래 소리가 주변의 밀도 높은 공기를 밀어내며 들리기 시작하면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이다.

어머니는 10원이라도 절약하려고 버스비도 아까워 걸어서 다니셨는데 아버지는 술만 한잔하면 그 비싼 택시를 타고 들어오곤 했다. 아버지는 농사에도 별 관심이 없어서 작물을 부지런히 돌보지 않았고, 당시 과수원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과수나무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자 결국 과수를 다 뽑고 땅을 갈아 그 자리에 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고추가 좋다는 말에 고추모종을 사다 심고 그해부터 고추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는 경운기가 없으니 결국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이 쟁기로 일일이 땅을 갈아엎었는데, 큰형은 공부한다는 핑계로 학교에 일찍 가 별로 일을 하지 않았다. 또 동생은 막내라 열외로 하고 작은형과 내가 주로 일을 도맡아서 해야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학교 가기 전에 밭일을 하다보니 학교에 가면 졸기 다반사였고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밭일을 하는 일상이 계속됐다. 또 여름에 고추가 열리기 시작하면 학교 가기 전 새벽에 일어나 고추 몇 포대를 따고 학교로 갔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또 몇 포대의 고추를 땄다. 친구들이랑 물놀이도 하며 고기도 잡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우리에겐 별로 허락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일에는 별 흥미가 없어 우리에게 일을 맡겨놓고 술을 마시러 읍내로 다녀오시곤 했다. 그래도 우리 형제는 어머니의 정성과 기도로 비록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올곧게 성장할 수 있었다. 시간이 수십년 흘렀다.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술만 마시고 어머니를 고생시켰던 아버지가 가장 먼저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아버지가 가끔씩 그립다.
황준성 <한국재활음악치료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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