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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집에는 길고양이들이 아침저녁으로 와서 끼니를 해결하고 간다. 처음에는 서너 마리였다. 그동안 새끼도 낳고 이웃마을 길고양이까지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슬금슬금 몰려들더라고 한다. 서너 달 지나자 열 마리도 넘는 고양이들이 터를 잡고 들락거리는 것을 보았다. ‘고양이 밥 주는 할머니’라고 텔레비전 동물 프로그램에라도 신청해야겠다고 하니 펄쩍 뛴다.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불쌍하고 구순 넘은 어머니도 덜 무료해서 좋다고 하면서 소문나는 것은 싫다고 하셨다. 동네라 봐야 여남은 가구가 사는데 고양이 일가는 스무 집도 넘는 듯하다. 일일이 사료에다가 국물을 부어서 현관이며 길목이며 놓아두면 와서 먹고 간다. 밥 때가 늦으면 문 앞에서 재촉하기도 하는 놈들.
우리 칠 남매도 어린 날, 저렇게 매달려 밥 달라고 아우성이었을까? 어머니 정성이 지극하기까지 하여 제 그름 모르는 철부지처럼 고양이들이 그만 미워졌다. 제발 그만 하시라고 하면 내심 서운해 한다. 도시에서 무슨 날이랍시고 보러온 자식들이 민망한 듯 말하면 “얼마나 재롱을 떠는데!” 툭 내뱉으신다. 이 말에는 속마음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못난 딸이라 그저 송구할 따름이지만.
젊어서 자식에게 헌신한 부모는 늙어서 자식들의 재롱을 보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한다. 삶의 이치이기도 하거니와 어쩌면 순리일지도 모른다. 그 외로움을 달래려고 길고양이들에게 준 정이 너무 깊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어머니께 정을 주지 않는다. 냉정한 사바나의 세계처럼. 먹잇감만 받아먹으면 가차없이 돌아선다. 어쩌다가 와서 몸을 스윽 훑고가는 놈들은 짝짓기 철을 만난 암고양이들이다. 그것도 모르고 만지려고 손을 갖다 대면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퀴고는 달아난다.
금세 성큼 다가온 겨울,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듯이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그립다. 사랑도 내리사랑이라 했지만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처럼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길 바란다. 그럼에도 다 큰 자식들은 일상이 바쁘므로 사랑을 줄 여가가 없다. 그 사이 늙어버린 부모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특히 겨울이 더욱 쓸쓸하고 허허로운 까닭은 추위가 겹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된 부모를 돌아보는 게 어른이 된 자식의 내리사랑이 아닌가 싶다.
황명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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