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945년 10월11일, 해방의 기쁨과 함께 탄생한 영남일보가 올해 창간 70주년을 맞았다. 영남일보 70년 역사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70년 격동의 근현대사와 맥락을 함께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구·경북 70년을 영남일보와 함께 되짚어보는 시리즈 ‘영남일보를 통해 본 광복 70년’을 시작한다.
지난 70년 대구·경북이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어 온 긍지와 자부심의 역사였다. 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을 때 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웠고 국가의 운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피와 땀으로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다. 국민의 주권과 민주주의가 유린당하고 있을 때 2·28 운동으로 4·19 민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민족이 가난의 굴레를 벗으려 몸부림칠 때 섬유산업을 바탕으로 산업화의 물꼬를 텄다. 이 같은 역사를 바탕으로 대구·경북은 5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며 현대정치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영남일보는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켜온 파수꾼이었다.
영남일보 70년사에 기록된 광복 이후 70년 우리나라, 특히 대구·경북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를 10가지 주요 사건을 통해 다시 읽어본다. 과거의 대구·경북을 통찰함으로써 미래의 대구·경북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광복 이후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선정된 10대 사건은 ①광복과 영남일보 창간 ②6·25와 낙동강전투 ③2·28 대구 민주운동 ④5·16 군사정변 ⑤새마을운동 ⑥경부고속도로 개통 ⑦구미산업단지·포항제철(포스코) 설립 ⑧6월 항쟁과 지방자치제도의 시행 ⑨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⑩ KTX 시대 개막 등이다.
10대 사건 선정에는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문형렬 영남일보 전 논설위원·사사 편찬위원,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이윤갑 계명대 사학과 교수(가나다 순)가 참여했다. <편집자 주>
1945년 10월11일 영남일보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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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광복과 영남일보 창간= ‘광복의 자유’로 가장 활발해진 분야가 언론·출판 분야였다. 영남일보는 1945년 10월11일 ‘최초의 순수 민간지’로 창간됐다. 13명의 전직 언론인이 힘을 합쳐 동인지로 창간된 영남일보는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진실된 보도와 불편부당의 자세를 근본 원칙으로 ‘신생 조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1950년 낙동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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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6·25와 낙동강전투= ‘고수 아니면 죽음(Stand or Die)’. 북한군과 물러설 수 없는 격전을 펼친 낙동강 전투를 통해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할 수 있었으며, 후퇴에서 반격으로 전세를 전환할 수 있었다. 이때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이 뚫렸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960년 2.28 대구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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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2·28 대구 민주화 운동=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2·28 민주화운동은 이승만 독재하에 1960년 2월28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대구 유세에 학생 참여를 막기 위해 자유당이 학교당국에 지시해 일부 학교 학생을 강제등교시키자 경북고와 경북여고, 대구고, 사대부고 등 대구지역 남녀 고등학생과 청년들이 ‘학원의 정치도구화 반대’를 외치며 평화적 거리시위를 벌인 민주운동이다. 2·28은 정부 수립 이후 첫 번째 민주운동인 4·19의 시작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영남일보는 ‘혁명풍’이라는 5회에 걸친 연재물을 통해 당시의 정황을 정확하고 소상하게 기록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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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16일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 당시 박정희 소장은 군인들을 이끌고 국회를 강제해산 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통치기구를 만들어 1961년 5월16일부터 1963년 12월26일까지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대구·경북이 대한민국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1970년 새마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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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새마을운동=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5천년 묵은 가난을 몰아낼 수 있는 의욕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우선 농촌의 생활환경을 바꾸는 ‘새마을 가꾸기 사업’부터 벌여보도록 합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4월22일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한 새마을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다. 대구·경북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다. 새마을운동을 진두지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미 출신이고, 새마을운동의 서막을 열고 산파 역할을 한 곳이 청도와 포항이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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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경부고속도로 개통= 서울에서 부산까지 남북을 관통하는 민족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가 착공 2년 5개월 7일 만에 개통됐다. 총길이 428㎞에 429억원을 투입해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4차로로 연인원 893만명과 연 165만대의 중장비가 동원되었다. 경부라인이 국가 발전 축으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기반이 된 인프라로, 이를 배경으로 대구·경북이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73년 포항제철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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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구미산업단지·포항제철소(포스코)= 구미산업단지와 포항제철소는 대한민국 산업화와 대구·경북 발전의 상징적 공간이다. ‘공해 없는 공업단지’의 건설이라는 모토로 전자기기의 수출과 전자공업체의 전문화·계열화를 목적으로 조성된 내륙공업단지다. 1969년 1단지를 착공, 1973년 완공됐다. 197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조강 생산능력 103만t의 포항제철소 1기 설비도 준공됐다. 포항제철 설립으로 ‘영일만 신화’도 이뤄냈다.
1995년 지방자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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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6월 항쟁과 지방자치제도의 시행= 1991년 시·군·구의회 의원선거와 시·도의회 의원선거가 실시되면서 30여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게 됐다. 그 뒤 1995년 6월27일 기초의회 의원과 단체장, 광역시·시·도의회 의원과 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게 됐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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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발생. 화재 당시 기관사가 문을 열지 않고 키를 뽑아 달아나는 바람에 승객들이 대피하지 못해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한 대형 참사였다. 건국 이래 최대 화재참사로 기록된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이후 10년, 2014년 우리는 세월호에서 또 다른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보았다.
2004년 KTX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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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KTX 시대 개막= 누적 이용객 4억1400만명. 하루 이용객 15만명. 총 운행거리 2억4천만㎞. 지난 10년간 KTX가 남긴 기록이다. 2004년 세계에서 5번째로 고속철도가 운행되면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 시대를 맞게 됐다. 대구·경북 등 지역으로서는 KTX 개통으로 발전 기회와 위기에 동시에 직면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자료조사=조사팀 박성희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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