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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당선작] 신발

2015-01-01
[시 당선작] 신발
차규선 그림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들

맨발보다 더 시려 보이는 저 표준의 사이즈들은

몇 번을 신어보고 몇 번을 돌아서 보고

몇 번을 벗어두고 나서야

발의 온도를 이해할까

오늘도 얇은 먼지와 흰 눈에게 제 크기를 내어준다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

그러나 아무도 저 시린 발은 사지 않겠다는 듯

지나가는 걸음들은 빠르다

맞춤이 아니어서 주인이 없는 발

몇 켤레의 신발을 신어 본 후에야

제 발의 온도를 고를 수 있나

나열의 난전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내

신발이 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발이 신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몇 켤레의 신발이 들렸다 놓였다 신겨졌다 벗겨졌다

뒤꿈치 똑똑 딛고 싶은 저녁 무렵

누가 나열의 난전에 놓인 신발을 사고 싶을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유리 너머 진열의 신발들에 눈이 흘리는 날

퉁퉁 부은 저녁의 발에 난전의 신발 한 켤레를 신겨 보는데

그새, 벗어놓은 헌 신발도 좋다는 듯

흰 눈발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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