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규선 그림 |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들
맨발보다 더 시려 보이는 저 표준의 사이즈들은
몇 번을 신어보고 몇 번을 돌아서 보고
몇 번을 벗어두고 나서야
발의 온도를 이해할까
오늘도 얇은 먼지와 흰 눈에게 제 크기를 내어준다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
그러나 아무도 저 시린 발은 사지 않겠다는 듯
지나가는 걸음들은 빠르다
맞춤이 아니어서 주인이 없는 발
몇 켤레의 신발을 신어 본 후에야
제 발의 온도를 고를 수 있나
나열의 난전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내
신발이 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발이 신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몇 켤레의 신발이 들렸다 놓였다 신겨졌다 벗겨졌다
뒤꿈치 똑똑 딛고 싶은 저녁 무렵
누가 나열의 난전에 놓인 신발을 사고 싶을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유리 너머 진열의 신발들에 눈이 흘리는 날
퉁퉁 부은 저녁의 발에 난전의 신발 한 켤레를 신겨 보는데
그새, 벗어놓은 헌 신발도 좋다는 듯
흰 눈발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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