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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일찌감치 준비해 차를 몰고 서울에 갔다. 아이도 보고 전시도 할 겸해서 떠났다. 추운 날씨라 몸은 얼었고 전시실에 작품을 설치하느라 기운은 소진됐다. 저녁에 겨우 몸을 이끌고 아이 집에 도착했다. 아들이 싱긋 웃으며 반겼지만 너무 지친 터라 대충 씻고 잤다.
아침에 또각 또각 도마 위에 채소 써는 소리에 눈을 떴다. “뭐 하노?” “볶음밥 해예.” “냄새 좋다. 맛있겠네.” 이렇게 말했지만 내심 그 이유가 궁금했다. 작은 상에 김치와 볶음밥 한 그릇이 차려졌다. “어머니, 많이 드셔예.” 순간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언제나 어리고 응석받이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많이 컸구나’하는 생각에.
아이는 몇 년 전부터 서울에서 공부한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알기 위해 이것저것 시켜봤다. 그의 인생에 지름길을 안내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노력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아이는 몇 번 재수를 하고도 답을 찾지 못했다. 주변에서 걱정할까봐, 아이가 주변에서 하는 말에 상처를 받을까봐 늘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은 가장 행복한 일을 찾아서 직업으로 갖는 것이다.
2년 전 아이가 어떤 공부를 하고 싶다 했고 그 말에 주저 없이 해보라고 답했다. 그러곤 바로 새 공부를 찾아 낯선 서울에 와 생활하고 있다. 이따금 전화가 온다. “어머니, 재미있어예.” 이 말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반찬을 잘 안 해준다. 대신, 전시가 끝날 무렵 쉽게 반찬 만드는 법 몇 가지를 가르쳐주고 인사동에서 밥을 사먹기로 했다. 둘이서 버스를 타고 종로2가에 내려 아이가 좋아하는 돼지불고기 음식점에 가서 맛있게 먹었다. 다 먹어갈 무렵 아이가 대추차를 사겠다고 해 전통찻집을 찾았다. 마주 앉아 대추차를 마시며 시시콜콜한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소리친다. “어머니, 저기, 눈이 내려예.” 까만 밤하늘에 정말 함박눈이 내린다.
며칠 뒤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가르쳐 준 된장찌개 해서 먹고 있어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가 훌쩍 커버린 것 같았다.한명희 <화가·갤러리위즈아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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