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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전기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
“변화란 원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주인공 맥 라이언이 우울한 표정으로 뱉어낸 말이다. 다소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이 말은 맥 라이언이 e메일을 주고받으며 키워온 미지의 한 사나이와의 온라인 사랑이 어떤 ‘원치 않은 일’로 망치게 될까봐 안절부절못하며 쏟아낸 것이다. 드디어 이뤄진 데이트에서 소식도 없이 나타나지 않은 온라인 연인에게 바람 맞고 돌아온 그녀가 뱉어낸 이 한마디에는 ‘막연한 환상’ 속 한 남자와의 인연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애처로움이 담겨져 있다.
‘막연한 환상’은 ‘현실의 야비함’을 마법처럼 덮어버린다. 이 야비함은 현실세계에서 어떤 관계를 지배해야 하는, 지배하려는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삶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 지배하려는 누군가는, 야비한 현실 조건 속에 편입되지 않거나, 현실 속에서 마주하지 않은 누구에게는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격려자로 받아들여지거나, 사랑하고픈 멋진 사람이 되기도 한다.
A에게 야비한 B는 동시에 C에게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즉 현실 속의 야비한 A가 환상 속의 사랑스러운 ‘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원치 않은 일이 생겨나길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설사 마주치지 못하고 ‘그냥’ 상상만으로 끝날 사랑이라도 ‘그냥’ 모르고 헤어지는 것이 나은 것이다.
‘유브 갓 메일’의 여주인공은 A이자 C이다. 극적 구조만 놓고 보면 흡사 ‘메디아’ 같고, 처해진 상황으로 보면 ‘줄리엣’ 같다. 하지만 이 주인공은 고전적 비극의 주인공들과는 너무나 다른 선택을 하거나 혹은 같으면서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메디아처럼 무자비한 칼부림을 하는 것도 아니며, 줄리엣처럼 가문의 원수인 로미오를 따라 순진하게 죽어버리는 준비된 비극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행복한 마음으로 가업을 망쳐버린 가문의 원수를 사랑으로 용서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이러한 야비함과 마주친다면 과연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이벤트는 잠시 현실의 각박함이나 야비함을 잊고 환상을 맛보게 해 주며 즐거움을 주는 것일 뿐이다. 이 이벤트가 현실이 아니듯이, 야비함은 해피엔딩으로 현실화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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