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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꿈의 현장

2015-03-18
[문화산책] 꿈의 현장

밤이면 늘 그렇듯 산책을 한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읽다가 나와서인지 걸음은 평소보다 느리다. 지금처럼 사유와 함께하는 느림의 길은 자신을 돌아보기에, 주위를 둘러보기에 너무나 훌륭한 거울이다. 하지만 이러한 느림의 길은 교통수단과 이동통신의 발달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내밀한 관계가 있다’는 주인공 밀란쿠의 말이 그림자가 되어 거울과 꿈 사이를 어른거린다.

기술혁명이 우리에게 선사한 빠름의 길은 거울을 변질시키거나 소멸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 시대는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고 있으며 그래서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는 밀란쿠가 옮긴 주장이 아니더라도, 현대 사회는 점점 기계중심으로 변해가고 기계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기계적 반응을 촉구하며 인간의 의지와 사유를 퇴화시키고 있다. 나는 기계에 의해 변질되거나 소멸해버리는 시간과 공간을 꿈의 현장이라 부르곤 한다.

밀란쿠는 오히려 ‘우리 시대는 망각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는 것’이라고 옮긴 주장을 뒤집는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이미 그 기계적 반응에 중독되어 더 잦고 더 빠른 기계적 자극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계적 욕망들이 현장의 경계를 흐리며 빠른 속도로 꿈의 현장들을 확산시키고 있다.

나는 카페 거리 벤치에 앉아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생각해본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실종자’에 대한 얘기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타자와 나, 현실과 꿈,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모호한 경계의 혼란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주인공인 ‘샹탈’의 이름을 부르며 “잠을 깨! 이건 사실이 아니야!” 하고 말하는 ‘그’로 인해 앞의 내용들이 꿈이 되는데, 그 꿈의 시작이 모호하다.

그리고 자문해보는 ‘나’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이 소설은 묻는다. ‘누가 꿈을 꾸었는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현실 속의 삶이 이런 뻔뻔스러운 환상으로 변형되었을까? 현실이 비현실로, 사실이 몽상으로 변했던 정확한 순간은 언제일까? 그 경계선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경계선이 있을까?’

어디서부터가 꿈인지 모르는, 그래서 액자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이 액자소설을 생각하면서 돌아오는 내내 나는 꿈으로의 실종, 꿈의 현장으로의 실종을 되뇌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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