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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해가는 우리의 사회가 느껴질 때면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 떠오르곤 한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우화적 교훈이 아니라, 잠든 토끼의 그 꿈의 유무가 궁금해진다. 만약 꿈을 꾸었다면 어떤 꿈을, 그러다보면 경주코스를 이탈해버린 토끼가 우리 사회를 닮은 어느 낯선 문명에서 두 눈을 뜨고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무인자동차로 변해 꿈의 코스를 질주한다.
‘잠자는 토끼’라는 별칭을 가진 무인자동차 안에서 나는 허공을 터치한다. 그러면 차창의 풍경들이 하나둘 닫히면서 윈도창이 여럿 생겨난다. 나는 되도록 많은 케이블TV 채널들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전자신문도 올려놓고 그 기사제목들을 살펴본다. ‘아날로그 거북, 디지털 토끼’라는 문화사설을 읽어보려다가 오랜만에 옛 생각이란 생각들을 해본다.
예전엔 ‘있고 없고’가 부의 기준이었는데, 요즘은 ‘어떤 게 얼마나’에 따라 다르다. 그러고 보면 옛 기계들은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TV 앞으로 모으기도 했고, 집집마다 보급되었을 땐 온가족을 하나의 채널로 모아 둘러앉게도 했다. 기술의 발달로 TV도 흑백에서 컬러로, 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었다. 그리고 TV를 대체할 수 있는 기계들도 다양해졌다. 컴퓨터, 노트북,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개인화가 되어버린 기계들이 수백수천 개의 채널과 프로그램들로 더 이상 사람들을 모으지도 않고 오히려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각자의 기계들에 갇혀 기계들이 꾸는 각종 코드의 다른 꿈들을 살아가게 한다.
‘잠자는 토끼’는 뒤죽박죽된 꿈을 꾸며 달려간다. 바다를 유영하는 B-29가 리틀보이를 투하하면 드럼을 두드리며 날아가는 파울홈런에 헐크로 변해버린 아이가 링에 쓰러져 죽은 조카의 의문사를 추적하는데 전자상가를 방화한 P군을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리셋증후군으로 진단하고 게임중독에 빠져버린 딸에게 몰려드는 하이에나들이 사이트와 앱을 뜯어먹다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먹었는지 차창에는 오류메시지들이 뜨고 오작동을 일으키는 ‘잠자는 토끼’는 제어불능상태가 되어 나는 불안에 떨고 있는데 샌드맨이 일으키는 거센 바람에 ‘잠자는 토끼’의 꿈도 차체도 모래로 부서져 허공을 나부끼는데 주변도 내 살점도 모두 모래로 부서져 꿈이 되고 있는데 비명을 지르며 토끼가 눈을 뜬다. ‘나는 얼마나 긴 잠에 빠져있었는가?’ 거북은 보이지 않고 ‘언제부터 여기가 사막으로 변해버렸는가?’
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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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기계들의 꿈](https://www.yeongnam.com/mnt/file/201503/20150325.01023080930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