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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두 출발선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금수저를, 어떤 사람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스테인리스 수저, 나무 수저를 물고 태어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절망하지만, 어떤 사람은 수행자처럼 살면서 춥고 배고픈 것을 감내한다.
목표를 향한 고행은 선택하기 나름이다. 쇠로 만든 수저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수저는 불을 건너지 못하며, 흙으로 만든 수저는 물을 건너지 못하는 법이다. 만물은 서로 생하거나 극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통의 절댓값은 똑같다.
다만 고통의 종류는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돌도 임자를 만나면 작품이 되기도 한다. 복을 닦는 사람의 최고 정점은 재벌이며, 공덕을 닦는 사람의 최고 정점은 부처다. 진리 향해 나아가는 길에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만물은 각자에게 적합한 쓰임새가 있기 마련이다. 일회용 수저는 야외 활동을 하거나 국민식품인 라면을 먹을 때 제격이다. 반면 스테인리스 수저는 잔칫집에서 부담 없이 사용하기에 좋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 가치가 밝혀지는 땅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삶의 복병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운수가 ‘억수로’ 사나우면 비행기 안에서도 뱀에게 물리는가 하면서 땅을 치겠지만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알기 어렵다. 금수저 또는 은수저도 스테인리스 수저나 일회용 수저에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강자는 때로 친절한 얼굴로 교양 있게 약자를 우롱한다. 그러나 하얀 광목 이불이 덮이는 순간까지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금수저를 무엇으로 뛰어넘을까? 오로지 자비와 지혜의 용광로뿐이다. 꾸준한 믿음은 운명보다 더 강하다. 자격도 없이 부귀해질 것도 없으며, 부질없이 빈천해질 것도 아니다. 시간적으로 제때에 공간적으로 제자리에 있을 때가 제일 아름답다.
자신의 지위나 재력에 의지해서 억지 쓰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참 딱하고 불쌍해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장차 저 사람들이 용광로를 지날 때 오만과 편견으로 뭉쳐진 가면은 벗겨질 것이다. 장식품이 다 떨어진 본래 모습은 어떨지 가히 짐작이 간다.
해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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