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테 하나 평균 3개월·280여개 수작업 공정…손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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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소재의 안경테를 생산하는 모습. CNC 기계를 이용해서 안경 프론트(동그란 앞부분)와 다리를 깎아낸 후에는 가공면을 일일이 손으로 다듬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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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C로 안경 형상을 깎아내고 나면, 육각통 연마기계를 통해 4차례에 걸쳐 안경테 표면 연마 작업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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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여 가지의 모든 공정을 거친 후 최종 검수작업을 하고 있다. |
혹시, 안경을 끼고 이 글을 읽고 있는가? 그렇다면 잠시 안경을 벗고, 그 테를 한번 만져보길 권한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안경테 하나가 완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개월. 150명의 사람이 무려 280여 가지 공정을 거쳐야 하나의 안경테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토록 가볍고 이토록 단순해 보이는 안경테 하나에 왜 그리 많은 사람과 복잡한 공정이 필요한 것일까? 무식하면 질문도 거침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정을 거치는 건데요?”그러자, 수화기 건너편에선 잠시 당황한 듯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걸... 지금 어떻게 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 오세요.”
◆ 노동집약산업의 대표상품 안경
“27세에 시작했어요. 이제 겨우 10년차니까 이곳 안경거리에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밉니다.”
<주>반도옵티컬의 이성백 부장은 명함 대신 안경테의 원재료가 되는 플라스틱 판재를 내밀었다.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라고 하는 것인데,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안경은 다 이걸로 만들죠.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안경산업의 주력 상품이었는데 이게 손이 많이 가는 재료다보니 취급하는 공장들이 다 사라졌어요. 지금 국내에서는 우리 공장에서만 이 소재로 안경을 직접 만듭니다. 한번 보실래요?”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각 공정을 손가락으로 꼽아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꼽으려니 손이 아플 지경이다. 대부분의 공장이 전 자동화된 요즘 세상에 안경공장만큼은 각 공정마다 일일이 사람손이 가야 한다니,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은 아마 안경공장에서 나온 말인가 보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안경이 한 달 평균 약 5만 장이다.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안경은 생산라인이 우리 공장밖에 없으니까 전 공정을 우리가 하지만, 다른 뿔테나 메탈 소재 안경은 50여 개의 협력업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북구 제3공단에 자리한 400여 개의 안경업체들이 이런 식으로 전체 제작공정의 한두 부분을 소화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하도급 형식으로 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만드는데, 유명 브랜드를 달고 나가는 게 속이 상한 거예요. 게다가 중국시장이 들어오면서 해외 브랜드 로열티가 200억~300억원씩 뛰었어요. 이럴 바엔 길게 내다보고 품질로 승부하자, 해서 2008년부터 자체 브랜드를 만들게 된 거죠.”
그 브랜드가 ‘폴 휴먼’이다. 지난 3월 1일, 때마침 삼일절에 개최된 밀라노 안경전시회에서 폴 휴먼은 ‘메이드 인 코리아’를 새긴 채 유럽 바이어들에게 인기몰이를 톡톡히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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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에 안경소매상으로 시작해 30년 전 대구에 안경공장을 차린 이상탁 사장(위쪽)과 새로운 수출길을 열고 있는 아들 이성백 부장. |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안경테
국내 유일의 생산 회사
다른 다리로 교체 가능한 테 특허
밟아도 안 부러지는 제품도 개발
◆가로등에 안경 씌운 이상탁 사장의 안경사랑
“27살에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안경공장을 했던 건 아니고, 그땐 울산에서 안경 소매상을 했었죠.”
부자(父子)가 똑같이 27세에 안경 밥을 먹기 시작했다며 반도옵티컬의 이상탁 사장이 웃었다.
“소매상, 도매상을 거치면서 안경공장을 하려면 대구로 와야겠다 싶어서 이곳에 온 게 30년 전이에요. 그때만 해도 종업원이 1천600명, 2천300명씩 되는 공장이 참 많았거든요. 그런 공장들이 30년 사이 다 문을 닫았죠. 중국시장이 들어오면서. 저는 그때 뒤늦게 종업원 100명 데리고 시작했으니까,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었어요.”
그가 명함 대신 컬러풀한 안경테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우리가 특허 받은 디자인인데...”
‘어, 어~’ 하는 순간, 순식간에 안경다리가 툭 떨어졌다.
“하하, 이게 입맛대로 다리 색깔을 바꿔 끼울 수 있는 것이거든요. 노란색으로 끼웠다가 빨간색으로 끼웠다가...”
그러면서 또 새로운 안경테 하나를 내민다. 이번에도 ‘어, 어~’ 하는 순간, 아래로 향해있던 안경 코받침이 위로 쑥 뒤집어졌다.
“이러면 안경알을 닦을 때 편하게 구석구석까지 잘 닦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이번엔 또 다른 안경 하나를 손바닥으로 꾹 눌러버린다.
“발로 밟아도 안 부러지는 안경이에요.”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이번엔 선수를 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안경테나 하나를 잡아 사장님 앞으로 쑥 내밀어 봤다.
“이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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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제품이 전시돼 있는 반도옵티컬의 2층 쇼룸. |
‘설마 그것까지야~’ 하는 순간, 안경다리의 일부분이 바람개비처럼 뒤집어지면서 안경테의 색깔이 카멜레온처럼 변한다. 알고 보니 자체 개발한 아이디어 상품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진열장이다.
“이런 개발 없이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1년에 신제품을 400~500가지 만드는데, 디자인실뿐 아니라 공장 직원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어요. 격려금 내걸고 제품 개발하는 거죠.”
거대 자본의 중국시장에 밀려 점점 설 자리가 위태해지고 있는 안경공장을 자신의 아들에게 이어가게 할 때에는, 아버지로서 복안(腹案)이 없을 리가 없다.
“다들 안된다고 했어요. 선배들도 ‘나이 들면 치우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는 아니었어요. 여기 이곳에서 우리나라 안경산업이 처음 시작됐고 그 역사가 70년인데, 이게 금방 없어질 리가 없죠.”
그래서 이 거리부터 다시 살려야겠다 생각했다.
“이미 바닥은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은 거죠. 중국제품이 싸긴 해도 품질이 들쭉날쭉하고 납품기일도 못 맞추는 일이 많아지면서 다시 한국시장으로 돌아오는 해외바이어들이 생겨났거든요. 그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뭔가 보여줘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2002년, 구청의 도움으로 가로등에 안경형상을 단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2004년에 지원센터가 들어설 때도 건물을 새로 지으면 시간이 걸리겠다 싶어서, 열일 제쳐놓고 건물 보러 다녔어요. 지금 그 지원센터 건물 흥정하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그런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안경이나 잘 만들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안경으로 내가 먹고 살았으니까 안경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죠.”
그렇게 조성된 안경거리로 요즘은 부자(父子)가 나란히 안경을 끼고 출근한다. 그 덕인지 공장 수출도 해마다 30% 이상 늘고 있다. 아버지의 한평생이 담긴 안경, 그 안경이 아들에게는 내일을 열어가는 든든한 렌즈가 되어줄 것이다.
글=이은임 방송작가 sophia92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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