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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한 부족은 나무를 벨 때 독특하고 고유한 풍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무릎까지 파헤쳐질 정도로 땅을 파고, 나무 주위를 돌면서 사흘 밤낮으로 소리를 지른다. 이쯤되면 굳이 밑둥을 도끼로 패지 않아도, 나무는 그만 새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다가 땅에 몸을 누이고 만다.
우리는 유혹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TV를 틀면 우리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는 온갖 광고와 유혹이 득시글하다. ‘미친세일’ ‘원 플러스 원’ ‘원가 이하 세일’ 등 자본가의 고도로 계산된 메시지에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프리카 나무처럼 실신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TV 홈쇼핑에서는 멀쩡한 냉장고, 압력솥, 냄비 등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우리를 부채질한다. 빨리 사야 한다고 조르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스마트한 상품이라고 우기고, 왜 아직 안 사느냐고 다그치고, 방송시간이 끝나면 모든 혜택이 사라진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방송을 보던 이들은 즉시 카드를 긁어댄다. 불안한 사람은 물건을 빨리 산다. 모니터 속에 신상품 옷을 입은 모델이 봄꽃처럼 화사하다.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행복의 이미지를 사기 위해 절망적으로 클릭질을 반복한다.
소비는 욕구불만을 채우는 과정인가. 돈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또 저지르고 만다.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인 줄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개 즉흥적인 소비는 잠시 위로받고 두고두고 괴로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이기고 넘어설 때 진정한 자존심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자신에 대한 보상이며, 자신을 최고로 대우하는 것이다. 사물을 바르게 보는 올바른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안목이 높다고 한다. 반대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없는 사람은 보편적인 사회적 가치에 의존한다. 이런 사람들은 쉽게 자본가의 표적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나를 팔았다는 노동의 증거다. 물질을 얻고 대신에 나를 잃는것, 어찌보면 쓰디쓴 돈의 맛이다. 물질의 가치는 절반은 생산자의 몫이고, 절반은 사용자가 품격있게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물질에 걸려 넘어진 사람은 안목이 숙성되도록 누름돌을 올려놓고 잠시 기다려보자. 한 곳에 화살을 두 번 맞지마라. 해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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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유혹 과잉 시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504/20150424.01017073913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