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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혜 <독립출판물서점 더폴락 공동대표> |
얼마 전, 매체를 통해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회에서 있었던 소동을 접했다. 서울시향과 협연한 아르메니아 출신 첼리스트 나레크 하크나자리안이 앙코르곡을 연주하기 전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언급했고, 터키인으로 추정되는 관객이 “입닥쳐!” 등의 야유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객들은 첼리스트에게 응원의 박수로 화답했고, 첼리스트는 앙코르곡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 100주기, 학살된 150만명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바치는 곡 ‘라멘타치오(애통)’를 연주했다. 커튼콜이 3차례나 더 이어지고 예정에 없던 사인회까지 열렸다고 하는데, 예술이 주는 감동은 비단 그 실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세상과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는 듯하다.
이 소동은 내게 1년 전 이맘때 발간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다시 펼치게 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휘두른 권력, 말도 안되는 폭력 앞에서 삶이 바스러져 갔던 5월. 소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죽어간 영혼의 말들을 대신 한다. 이 소설은 사실적으로 광주에서 있었던 잔혹한 일들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그 영혼의 말을 대신함으로 넋을 위로한다.
내게는 ‘광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5·18 전야제의 모습이다. 낮부터 시작된 전야제 행사로 흩어진 대열들이 금남로 일대로 모여들고, 저녁께가 되면 그 넓고 한적하던 거리가 광주시민들로 가득 차 더 이상 단 한명도 더 들어 설 수 없을 것만 같이 발디딜 틈 없는 곳이 된다. 그 연대의 장면은 사진처럼 뇌리에 박혀 매해 광주와 5월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살다보면 다른 이들의 고통을 목격할 때가 있다. 불합리한 상황에 심장이 뛰지만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 입을 닫거나, 혹은 나의 안일함과 무신경 때문에 때를 놓치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한탄과 후회를 뱉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한탄과 후회가 아프면 아플수록 다음의 목격에서는 결코 등을 돌리지 않는 법이다.
일상을 살기에도 빠듯한 시간 속에 타인의 고통을 쉽게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같은 방식, 아르메니아 학살을 되새겨 라멘타치오를 연주하고, 80년 5월의 고통을 글로 옮기는 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 그것이 예술가의 자세가 아닐까.
다시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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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고통의 연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505/20150522.0101707493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