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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
메르스 여파로 지난 6일 60회를 맞은 현충일 행사는 많이 축소되거나 취소되었다. 애국 선열의 고귀한 희생의 가치는 현충일에만 되새길 일이 아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많은 선조 덕분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영광이 있을 수 있었다. 후손으로서 그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은 잠깐의 묵념을 넘어서, 그 죽음이 새겨진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암울한 미래만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한다. 역사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제대로 정리조차 못했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에 대한 현 정부의 대응도 몹시 실망스럽지만, 국내에서 벌어졌던 교학사의 역사교과서 논란과 같은 민족 자긍심을 짓누르는 세력들의 파렴치함에 더 마음이 아프다. 광복이 되고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독립투사를 잡던 친일 매국노들은 반공을 외치며 극적으로 기사회생했고,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했다. 광복 이후의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할 때는 암에 걸릴 듯 스트레스를 받았다. 정의는 승리한다고 교과서에서 읽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그 괴리에 분노했으나, 분노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념대립과 이데올로기로 얼룩진 한국사의 굽이굽이에서 잊어진 이름 가운데, 전봉준 장군이 있다. 한국판 프랑스혁명이 될 뻔한 동학혁명의 상징 전봉준은 “중민(衆民)이 억울해하고 한탄하는 고로 백성을 위하여 해를 제거”하고 “세상일이 날로 옳지 못한 방향으로 되어가므로 개탄하여 한번 세상을 구제하”려고 혁명에 나섰다고 밝혔다. 말로써 아름답고, 내용은 정의롭다. 일본 공사가 장군의 재질을 아껴 그에게 일본 정부의 양해를 얻어 살 길을 찾아봄이 어떠냐고 회유하자 장군은 “구구한 생명을 위하여 활로를 구함은 내 본의가 아니다”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태도는 당당하고, 절개는 드높다. 동포와 나라에 대한 사랑이 확고하다.
하지만 우리는 전봉준 장군과 동학 혁명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일본과 스포츠 경기에서 이긴다고 무너진 민족 자존감이 세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전봉준 장군과 같은 순국 선열들이 죽음으로써 지켜온 조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버려진 그 역사를 들끓는 애국심으로 바로 세울 때, 당당하고 떳떳하게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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