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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채널선택권 싸움에서 졌을 때 간혹 보게 되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간은 아내가 나를 연극 연출가, 희곡 극작가로 인정해 주는 시간이다. 어쩌다가 보는 드라마인데도 지나간 스토리나 앞으로 전개될 스토리에 대해서 꿰뚫고 있는 남편이 아내에겐 정말 신기한 것이다.
“당신, 보지도 않았는데 우예 알아예?” “뻔하지, 뭐.” “앞으로 같이 보지 맙시더.” “와?” “미리 다 얘기하이 재미 없잖아예.”
드라마 작가들은 시청률에 목을 맨다. 그들에겐 자신의 생각과 느낌, 의지보단 대중의 기호가 중요하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게 얼마나 괴로울까. 그들인들 자기가 생각하고 느낀 것을 쓰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방송 시스템이다. 그들의 괴로움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모 방송의 코미디프로그램 ‘시청률의 제왕’이란 코너다.
“당신도 인자 다 됐네?” “와?” “당신 말이 하나도 안 맞잖아.”
요즈음 들어 그들은 항상 나의 예측보다 한 발 앞선다. 무엇을 생각하든 상상, 그 이상이다. 이젠 그 끝 간 델 모르겠다. 막장에 막장을 더하고 거기에 누아르풍의 비장함과 판타지까지 가미되어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드라마 작가들의 상상력에 존경을 표하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아 도대체 이렇게 꼬아 놓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알고 싶어 TV에 시선을 고정한다.
“여보, 이 드라마 이거 어젠 우예 됐노?” “하도 복잡해가 설명해도 잘 모를걸.” “그래도 해 도. 궁금하다 아이가, 얼릉!” “아, 참 귀찮게 하네. 카이 그기 우예 된 거고 하마(어쩌구 저쩌구).” “뭐라꼬? 보리가 비단이 엄마가 아닌데 와 지가 엄마라꼬 케가…. 그기 말이 되나!” “와 내한테 신경질인교.” “아! 미안하다. 근데 비단이는 저거 엄마가 누군지 아나?” “나도 몰라! 그냥 입 닥치고 보이소! 보다보마 다 안다카이.”
아! 내가 잘못 생각했다. 작가가 존경스러운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존경스럽다. 드라마 작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의 상상력을 빌려 시청자의 기호에 맞게 또는 반하게 잘 정리해 놓은 것이구나. 역시 훌륭한 시청자는 훌륭한 드라마와 작가를 만드는구나. 연극판에도 ‘좋은 관객이 좋은 연극을 만든다’는 말이 있잖은가.
아! TV드라마 작가들은 참 안쓰럽다. 앞으로 드라마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의지, 느낌대로 쓴 드라마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길 희망한다.
김태석 <극단 예전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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