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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노블레스 오블리주

2015-08-13
[문화산책] 노블레스 오블리주

창작오페라 가운데 일제 강점기 대한광복회 총사령으로 활약했던 고헌 박상진 의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있다. 항일의병장 왕산 허위의 제자이기도 하고, 청산리대첩의 영웅 김좌진을 휘하에 두고 맹렬히 활동했던 인물이지만 최근까지도 세상에 덜 알려진 것 같다. 왕산은 항일운동으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 최초로 교수형을 당했는데, 박상진이 홀로 스승의 시신을 수습해 뒷날 선산에 모셨다.

박상진 의사에 대해 아는 바 없기로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창작오페라 박상진’의 대본 각색을 맡으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울산 송정 출신 대지주였던 그는 조선인 최초로 대한제국 사법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 판사 발령을 받지만, 일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하고 본격적으로 가산을 정리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흔한 말로 ‘부와 명예’를 다 가졌지만 나라를 위해 온전히 희생한 인물이다. 대한광복회를 창단해 군자금 마련과 친일부호 처단 등 비밀결사활동을 벌였지만, 조직이 발각되면서 일본군에 체포돼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았다.

1945년 민족의 광복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 동안 박상진 의사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가족들을 희생시키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은 많다. 특히 경북지역에서 구국을 위해 일어선 우국지사들의 행보가 두드러졌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과 김대락 선생을 그 선두에 세울 수 있겠다. 두 분 다 안동의 명문대가 출신이면서, 요즘의 경제적 가치로 수백 억원, 수천억 원에 이른다는 재산을 정리해 수십 명의 가족과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다. 노년의 우국지사가 엄동설한에 만삭의 손자며느리까지 달구지에 태워 혹한의 땅 간도로 떠나는 풍경은 상상만으로 코끝이 시큰하다.

재산도, 귀한 신분도, 가족의 안녕도 모두 버리고 나라를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찾아갔던 수많은 이들의 행위를 무엇으로 표현할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로 옮기자니 아무래도 외국어여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칼레시의 지도자 6명이 보여준 희생을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사례로 삼지만 사회지도층의 자기희생이라면 우리의 우국지사들이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다행히 국가의 존망이라는 극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일까.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홍보마케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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