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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러 와.” “요새 얼마고?” “2만원.” “뭐 그리 비싸노?” “예매하면 1만5천원이고 단체로 하마 1만원이다.” “그라지 말고 아예 9천원 해라. 싸게 해가 관객 마이 오는 기 안 낫나.” “자존심 안 있나.”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 수요공급의 법칙이 안 있나. 객석 비는데 채워야지.”
대학교 때부터 30년 넘게 연극하는 나를 도와주고 걱정해 주는 친구와의 대화다. 나를 위해 조언을 해준다고 하는 말인데도 듣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사실 이 말을 듣기 전에 벌써 시장경제의 가격탄력성을 시도해 보았다. 수요공급의 법칙을. 그러나 시장경제의 가격탄력성은 요지부동이었다.
“싸게 해 봤는데 그렇다고 관객이 늘진 않더라.” “아! 예술은 가격에 의한 탄력성이 낮구나. 그러면 가볍고 재미있는 흥행성 있는 작품 만들어라.” “….”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친구다. 같이 술잔을 나누며 예술경영에 대한 얘기를 밤새워 나눠도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술병이 늘어나는 만큼 예술이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난한 예술가로서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벗겨라!” “뭐라꼬?” “일단 살아야 될 거 아이가?” “니 미쳤나!” “뭐 어때서. 일단 알리야 될 거 아이가. 알리는 데 벗기는 것만큼 좋은 거 어디 있노? 너 극장 대구에서 아는 사람 얼마나 되노.” “벗을 아가 없다.”
드디어 예술이 살아야 하는 방법을 위한 논쟁은 ‘예술과 외설’의 문제에까지 나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친구의 열변에 예술로 포장된 외설을 시도해볼까 하는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술 취해 침을 튀기는 친구의 목소리와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오버랩되면서 나의 귀를 간질이기 시작한다.
“예술, 외설 그거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래 뭐 어때. 니만 알면 되지. 그거 아무도 모른다. 알량한 자존심 그게 뭐 중요하노? 일단 벌어야 니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다 아이가.”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사라져가는 친구의 뒤통수에 대고 중얼거린다.
“야 임마! 니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도 자존심이 있다. 니는 예술가의 자존심이 뭔지 아나? 예술의 가치가 뭔지 아나?!”
김태석 <극단 예전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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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예술과 자존심](https://www.yeongnam.com/mnt/file/201508/20150828.01017074752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