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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원순 <미술평론가> |
인간이 행한 가장 오래된 축제 의식은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Osiris) 축제’이다. 오시리스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지상세계에 풍요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이집트인들이 널리 숭배하였다. 이 축제는 슬픔과 비탄에서 시작해 환희로 끝나는 부활 기원의 의식이었다. 이들은 죽음과 부활의 상징인 오시리스 축제에 참여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하고 오시리스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오시리스와 동일시함으로써 죽었다가 살아나는 오시리스의 삶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 그와 동일한 갱신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축제는 무엇을 축하하고 무엇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큰 규모의 행사를 뜻한다. 사육제와 카니발은 물론 각종 문화축제, 거리축제, 그리고 개교 기념축제 등이 이러한 축제의 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각 지방에는 지역민의 친목과 단합을 위한 잔치로, 또 관광산업의 일환으로 수백 가지의 축제가 일년 내내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축제의 홍수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축제를 여는 데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런 투자는 낭비가 아니라 재생산의 밑거름이다. 투자는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생성되기 때문에 마땅히 축제의 결실이 투자자에게 이득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체험하는 축제는 과연 어떤 양상인가. 온갖 이름으로 열리는 우리의 축제는 차별성이나 특성 없이 처음부터 먹고 마시고 떠드는, 원시적 본능과 감각적·표피적 내용의 행사로 소음과 무질서, 쓰레기만 남기는 난장판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이 축제에서 무엇을 얻고 체험하고 기억할 것인가. 어느 문학평론가는 “현대인의 축제는 썩어가는 것 속의 구더기의 삶처럼 극히 짧은 한순간의 포식문화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와 함께 경고했다.
일상의 잡다한 얘기로 소란스러운 그리하여 진지성과 경건함, 신성함이 없는 한국의 결혼식장 풍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외국인의 말처럼 우리의 축제문화도 그것과 다름이 없다. 지금은 조잡하고 의미 없는 우리의 축제문화에 대하여 평가하고 반성하는 진지한 태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다음 세대의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삶의 고통과 비애를 씻고 극복하는 갱생·부활·구원의 의미론적 상징체계로서의 축제가 되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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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진정한 축제를 위하여](https://www.yeongnam.com/mnt/file/201509/20150903.01023082351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