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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은적사 대웅전 옆 은적굴. 왕건이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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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사효굴 바위에 새긴 한자(위)와 사효굴 내부. 동굴이라기보다 석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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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도통굴. 도성대사가 수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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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왕굴. 지방문화재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다. |
왕건의 전설 간직한 앞산 왕굴
대구서 가장 큰 동굴
지방문화재 등재해도 손색없어
원기사 경내 왼쪽 절벽 황룡굴
높이 4m, 폭 3.5m
12m까지 사람 들어갈 수 있어
남한에 있는 동굴은 약 1천개. 이 가운데 대구에도 여러 개의 동굴이 있다. 삼척 환선굴, 울진 성류굴, 제주도 만장굴처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웅장하고 화려한 동굴은 없지만 대구지역 동굴은 하나 하나 재미있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비슬산 사효굴=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양리 산114에 있는 천연석굴이다. 달성군 대구테크노폴리스에서 유가사 방향으로 가다 비슬산 양리 중턱에 위치한다. 산자락 초입에 농업용수로가 있어 물소리가 요란하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의 사촌형 재훈의 네 아들 결(潔)·청(淸)·형(泂)·호(浩)가 천만(喘滿·숨이 차서 헐떡거림)에 걸린 부친과 함께 화를 피해 석굴로 숨어들었다 부친이 계속해 기침을 하는 바람에 왜군에게 발각돼 차례로 죽임을 당한 곳이다. 왜군이 마지막으로 굴에서 나온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으나 연로한 아버지 대신 아들이 먼저 나왔음을 알고 효심에 감동해 ‘차인 효자지부 후인물해(此人 孝子之父 後人勿害·이 사람은 효자의 아버지이니 뒷사람은 해치지 말라)’라는 글을 쓴 패를 아버지의 등에 달아주고 살려보냈다고 한다. 임란이 끝난 후 이 사실을 보고받은 선조가 효자 정려를 내려 사효굴(四孝窟)이라 칭하고 효행을 기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882년 곽재훈의 9세손 주곤이 암벽에 사효굴이란 글을 새겼으며 인근에 4효자의 묘소가 있다. 사효굴은 안산암으로 돼 있으며 4개의 거대한 바위가 서로를 받쳐주고 있는 가운데 그 틈 사이로 공간이 생겨 굴의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달성군에서 돌계단과 나무데크를 설치해 관람객이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비슬산 도통굴=신라시대 포산(비슬산)에 숨어 도를 닦은 ‘도성’과 ‘관기’ 두 고승 가운데 도성암을 창건한 도성대사가 수도한 석굴이다. 하지만 굴이라기보다 거대한 바위가 풍화돼 그 아래 생긴 10평(33㎡)쯤 되는 균열 공간이다. 도성대사가 이곳에서 도를 통했다고 해 도통굴이라 부른다. 도성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다 몸이 저절로 튀어나가 공중으로 날아간 다음 수창군(현 대구시 수성구 일대)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온다.
유가사 일주문에서 임도를 따라 수도암을 거쳐 도성암으로 올라가면 멀리 거대한 암벽이 보이는데, 바로 밑에 도성암에 있다. 도성암 뒤로 약 100m 오르면 암벽이 병풍처럼 남쪽을 향해 있다. 암벽의 높이는 30m 정도. 그곳에는 거송이 암벽을 뚫고 횡으로 자라고 있다. 도성대사가 수도한 곳으로 추정되는 암벽 아래 평평한 공간이 있다. 연기에 검게 그을린 구들장돌도 있어 사람이 거주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비바람을 피하기엔 충분하지만 샘은 보이지 않는다. 도성암은 수도승이 머무는 곳이라 뒷산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앞산 왕굴=앞산 안지랑골 안일사 위 남서쪽 500m 지점에 위치한다. 안산암으로 된 거대한 바위 속으로 동굴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공수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앞산 은적굴을 거쳐 이곳에 머무른 다음 임휴사로 넘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굴 오른쪽 구석에 샘물이 있는데 왕건이 마셨다고 해 장군수로 불린다. 왕건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첩보를 얻은 견훤의 군사가 이곳으로 올라오자 운무가 덮이고 왕거미가 줄을 쳐 오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굴 내부에는 사시사철 여러 개의 촛불이 켜져 있으며 무속인들이 기도처로 사용하고 있다. 전영권 대구지오 자문위원(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은 “대구지역 동굴 가운데 가장 크고 웅장해 지방문화재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앞산 은적굴=앞산 큰골 은적사 대웅전 옆에 있는 조그마한 풍화동굴이다. 어른 1~2명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 앉아도 될 만한 공간이다. 굴속에 왕건이 숨어있어 ‘은적(隱跡)’이란 이름이 전해온다. 바위의 재질은 왕굴과 마찬가지로 안산암인데 기도처로 사용하기 위해 굴을 넓히고 그 사이에 벽돌을 쌓았다.
▲앞산 황룡굴=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앞산 달비골 입구에서 평안동산 쪽으로 1㎞쯤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 원기사 방향으로 700m 정도 가파른 시멘트길을 오르면 원기사에 다다른다. 황룡굴은 원기사 경내 왼쪽 절벽에 있는 천연 풍화동굴이며 높이 4m, 폭 3.5m 정도 된다. 석벽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와 굴 입구에 수심 2m쯤 되는 샘을 이루고 있으며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의 길이는 약 12m다. 내부엔 소원성취를 비는 촛불함과 불상이 있다. 황룡굴 말고도 이곳 절벽엔 또 다른 작은 굴 2개가 더 있다. 하나는 산신각 대신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굴은 황룡굴 위쪽에 위치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대구 비파산(琵琶山)에 샘물이 솟아나는 용천지석(湧泉之石)이 있다’고 해 황룡샘을 ‘석정(石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오류다. 택리지에 나오는 비파산은 비슬산의 또 다른 이름이고 당시 앞산은 비슬산, 비파산과 무관한 성불산(成佛山)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경상도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비슬산으로 나오지만 청구도, 대동여지도, 동국팔도대총도에는 비슬산이 비파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등장하는 용천지석은 용천사(湧泉寺·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62)에 있는 석정일 가능성이 높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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